씨앗들의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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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원 장로
2018년 11월 14일(수) 09:03
가을은 여행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봄 여름 땀 흘려 열심히 일한 결실을 거두고,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계절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산천은 곱게 물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나선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떠난다.

숲에도 가을여행이 한창이다. 식물은 동물과는 달리 한 번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산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들은 여행을 하고 싶어도,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붙박이 삶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할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식물들을 위해 일 년에 딱 한번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것이 씨앗과 열매들의 가을여행이다.

나무의 경우 해마다 한 나무에 수백에서 수만 개의 열매들이 열리지만 이들이 모두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썩거나 동물의 먹이로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척박한 땅이나 돌 위에서 말라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다. 식물들이 좋은 동반자를 찾아 함께 떠나는 여행을 들여다보자.

바람을 동반자로 떠나는 식물들이 있다. 이 열매와 씨앗들은 바람을 잘 타기 위해 프로펠러나 깃털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씨앗 자체도 가볍고 작아 멀리 이동하기에 유리하다. 즉 버드나무처럼 종자에 털이 모여 타래를 이루거나, 단풍나무, 자작나무처럼 날개를 발달시키거나, 피나무처럼 날개 모양의 긴 포를 달고 바람과 함께 멀리 날아가 번식한다.

물이 동반자인 식물들도 있다. 연꽃, 고마리, 야자 등 물속이나 물 근처의 상당수 식물이 냇물이나 바닷물을 이용해 번식한다. 물을 따라 흐르다가 머무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이런 식물들은 통기조직이 발달하거나 열매의 일부에 공기가 들어가 있어 물에 잘 뜨고 곰팡이나 부식에 대한 저항력을 갖고 있어 잘 썩지 않는다.

동물을 이용하는 식물들이 있다. 도깨비바늘, 도꼬마리, 가막사리, 우엉 등은 열매 끝이 가시나 바늘처럼 생겨서 동물들의 털에 달라붙어 이동하거나, 끈적끈적한 점성 물질이 분비되어 털에 붙거나 사람의 옷에 붙어 이동하기도 한다. 특히 제비꽃, 금낭화 등은 개미들을 이용한다. 씨앗에 엘라이오좀(elaiosome)이라는 단백질 알갱이가 붙어 있어서 개미들이 그것을 먹으려고 집으로 가져간다. 열매는 개미의 턱 힘으로 깰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래서 개미들이 단백질 알갱이만 먹고 씨앗은 다시 밖으로 버린다. 그곳에서 새싹이 나고 잎을 피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사람들은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식물들의 여행은 생존의 문제이고, 종족이 이 땅에 더 많이 번성하게 하기 위한 절실함이다. 나무와 풀들의 마지막 사명은 씨앗이 번식에 알맞은 장소로 안전하게 옮겨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어미로부터 멀리 떨어져 큰 나무와의 경쟁을 피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 전략이 다양하다. 자신의 특징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전략이 많다. 그리고 그 전략들이 얼마나 훌륭한 결과를 얻었는지는 푸른 숲을 보면 알 수 있다. 숲의 지혜로 좋은 동반자를 찾아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가을여행을 떠나봄은 어떨까.

이춘원 장로 / 시인·산림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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