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널다리골'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8년 11월 08일(목) 09:14
여전도회 교육사업의 간략한 역사



1) 태동기(1889~1927)

여전도회는 1898년 2월 20일 평양의 널다리골교회에서 마포삼열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여신도 이신행, 신반석, 김성신, 박관선씨 등의 발기로 63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한다.

1889년에서 1927년 사이에 여전도회의 여러 지회와 지방연합회들이 설립되었고, 각 여전도회들은 초창기부터 전도활동에 주력하였다. 축호전도, 전도부인, 날연보제도 등의 전도활동이 있었고, 이미 이 시기부터 제주도와 만주 봉천에까지 전도자와 목사를 파송하는 외지전도까지를 수행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초창기 여전도회가 주력하였던 사업은 전도활동과 나란히 교육사업이었는바, 야간의 부인학교를 통해 문맹퇴치, 교양강좌를 실시하였고, 부인 사역회를 개최하여 성경공부, 미신타파, 한글계목, 생활개선 교육, 전도강연을 시도하였다.

여전도회는 초창기부터 단순히 전도와 교육사업 만이 아니라, 대사회적 활동, 특별히 사회를 정화하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절제운동을 통하여 국민계몽운동을 일으켰고, 물산장려운동, 폐창운동, 금주금연운동, 축첩반대운동을 펴 사회 정화에 앞장섰다. 이 시기 여전도회는 단순히 교회의 일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민족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운명을 같이한다는 의식이 철저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여전도회는 세계 여권운동단체인 YWCA를 창시하여 한국사회에 기독교적 정신을 뿌리내리는데에도 기여하였다.

이와 같은 초창기 여전도회의 활동은 이미 여전도회가 평신도 여성 지도력을 통전적으로 훈련하고 실천하는 장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여전도회는 선교, 교육 그리고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봉사와 섬김의 지도력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첫 걸음을 내 디뎠다.

2) 성장기의 여전도회

1927년을 기점으로 여전도회는 장로교 총회에 여전도회 총회설립을 허락받아 1928년부터는 총회활동을 시작하였다. 1928년부터 2000년 이전까지 여전도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성장기를 맞는다. 이 시기는 '창립초기', 해방 이후의 '재건기', '발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바, 이 기간 여전도회의 평신도 지도력 형성 및 활동은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겠다.

① 창립초기 (1928-1945)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하이기는 하였지만 여전도회의 창립총회를 기점으로 여전도회의 규칙이 마련되고, 조직이 겸비됨으로써 여전도회의 기초를 놓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도 창립 초기부터 주력해온 선교, 교육, 그리고 사회봉사라고 하는 삼중적 과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선교 사업으로, 창립초기부터 시작된 선교의 열정으로 최초의 여선교사를 외국으로 파송하기도 하고, 일제 치하에서 살기가 어려워져 해외로 흩어진 여전도회들과도 협력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의 교육 사업은 특별히 '여전도사 양성'에 주력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선교사를 도와 지방을 순회하며 사경회를 인도하고 전도활동에 참여하였던 '전도부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단기성경학원을 운영하였고, 후에 '지방 성경학교', '고등 성경학교'로 수준을 차등화하여, 보다 전문적인 여전도사 및 교회 여성 지도자 교육을 강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여전도회는 국가를 위하여 국채보상운동, '탈환회운동', '패물폐지 부인회', '애국부인회', '신사참배 거부운동'등을 주도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나라와 민족을 위한 봉사와 섬김의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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