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두 글자 죽어도 잊을 수 없어…"

[ 3.1운동100주년기획 ] 기독교교육사상가열전 3. 남궁억 <3> 민족교육

최태육 박사
2018년 11월 06일(화) 15:52
강원도 홍천에 소재한 한서기념관 앞에 세워져 있는 남궁억 장로의 동상.
1933년 12월 10일 홍천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을 때, 일제의 한국강점을 이토 히로부미와 그 주구(走狗) 이완용이 국왕을 협박하여 국권을 찬탈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것(일제의 한국강점)만은 … 죽을 때까지 반대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결코 반제국주의이므로 처벌한다면 어떤 벌을 받아도 상관없다. "

남궁억은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나는 결코 반제국주의 이므로 죽을 때까지 일제의 한국 강점을 반대하고 독립을 주장할 것"이라고 하였다. 1933년 체포되어 행해진 경찰서 밀실조사에서도, 1934년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때에도 그는 일관되게 일제의 한국 강점의 부당성을 질타하고 민족의 독립을 주장하였다. 일제의 한국 강점의 부당성과 민족의 독립을 고취시키는 것이 바로 남궁억의 교육철학이었던 것이다.

모곡학교 아침 조회 시간에 남궁억은 "'조선'이라는 두 글자는 죽어도 잊을 수가 없으니, 너희들도 조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또한 한국어 시간에 학생들에게 용감하게 힘을 길러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결코 굴복하지 않으면 한국의 독립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먼저 용감한 정신"을 기르라고 하였다. 죽더라도 민족운동과 그 사상을 버리지 말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역사를 담은 동사략(東史略)과 한국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조선화(朝鮮話), 즉 조선이야기를 저술하고 모곡학교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이와 관련한 판사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조선이란 나라는 이렇게 훌륭한 고유 역사가 있으므로 함부로 모화주의, 이른바 중국을 대국이라 한다든지, 다른 나라를 선망해 보든지 하고 있으므로 그런 생각을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를 발행했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중국'과 '다른 나라'이다. 민족의 주체의식을 갖지 못하고 중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를 대국으로 보는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한국의 주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동사략과 조선이야기를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남궁억은 자신이 짓거나 개사한 창가를 매주 1회 5학년과 6학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무궁화 삼천리', '철 잃은 나비', '무궁화동산' 등이 대표적인 창가이었다. 이중 '무궁화 동산'은 무궁화가 조선민족을 대표한 꽃으로 한국 민족이 번창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무궁화 삼천리'는 한국 민족과 산야를 찬미하고 자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철 잃은 나비'는 일제의 탄압과 고달픈 생활난으로 북간도로 쫓겨 간 한국 사람들의 고통스런 생활을 노래했다.

남궁억은 조회 시간과 국어 시간에 민족의식과 나라의 독립을 고취시키는 강의를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조선의 역사를 저술하여 이를 가르쳤으며, 우국창가를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불렀다.

1933년 11월 십자당(十字黨) 조직 건으로 일제에게 피체되어 8개월간 투옥되었다. 그러나 일제에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다가 1939년 별세하였다. '타 민족을 의지하려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남궁억의 민족의식은 대국을 선망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최태육 박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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