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하신 주님의 정체성은 종이셨다.

[ 주간논단 ]

오성춘 목사
2018년 10월 30일(화) 16:23
성육신하신 주님의 정체성은 종이셨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의미는 예수님을 자기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셔서 하늘의 생명과 신비와 은혜로 넘치게 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채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 영접의 두 번째 의미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모델을 본받아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이요, 또한 예수님의 정체성을 본받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 종의 삶을 사셨으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진짜 종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말 번역에는 '하나님의 본체,' '종의 형체'로 되어 있어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시지만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완전한 종은 아니고 종의 형체만 가졌을 뿐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 성경에는 본체라는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예수님은 진짜 하나님이셨으나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육신하여 진짜 종으로 사시고 죽으셨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처럼 진짜 종으로서 정체성을 본받는 것이요,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람들을 섬기며 종으로 사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종의 탄생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종들은 자식을 낳더라도 아무 곳에서나 낳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종으로 성장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멸시받는 동네에서 예수님은 성장하셨다. 예수님은 후지고 더럽고 폭력의 동네에서 자라났다. 종이 어떻게 좋은 환경을 찾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종으로 사셨다. 종은 소유가 없다. 자기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그는 진짜 종이 아니다. 집도 없고 밭도 없고 심지어 입고 있는 옷, 먹는 음식까지도 자기의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가 종이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종으로 죽었다. 종의 죽음은 영광스럽지 못하다. 예수님은 죽을 때까지도 멸시를 받으며 채찍에 맞으며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죽었다. 종은 생명을 바쳐 주인을 위해서 일하다가 소리도 없이 죽어서 묻혀 버린다. 예수님의 죽음은 가장 천한 종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을 종의 죽음이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셨는데 그것을 다 버리고 종이 되어서 사람들을 섬겨야 했는가? 그것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주 장사에 비유하고(마 13:45,46) 우리를 극히 값진 진주로 비유했다. 극히 값진 진주를 만난 예수님은 그 진주와 사랑에 빠졌다. 예수님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 그 진주는 자기의 모든 소유보다 더 값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값진 진주로 여겼고 우리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종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종의 삶을 살고 종으로 죽으면서 그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본체를 버리시고 진짜 종이 되셨다.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놀라운 복과 은혜와 생명을 넘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종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예수님과 함께 생명 사랑을 위해 종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다시 한번 이 땅에 하늘의 영광으로 충만한 시대가 임할 것이다.



오성춘 목사/장신대 초빙교수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