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예배와 공휴일

[ 주간논단 ]

박재윤 장로
2018년 10월 23일(화) 08:50
지난 9월 30일은 추석 다음에 맞는 첫 번째 주일로, 필자가 출석하며 장로로 봉사하고 있는 경동교회(기장 소속)에서 매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이었다.

11월의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대다수 한국 개신교의 전통은 미국에 첫 유럽 문명과 개신교 신앙의 개척자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역경을 헤치고 얻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린,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국경일로 정하여 감사절로 지켜온 소중한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유럽이나 미주 각국이 제각기 자기 고유의 전통에 따라 저마다 다양한 날을 감사절로 지키고 있음이 분명한 만큼 경동교회처럼 우리 민족의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적 명절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명절로 정하여 지키면서 감사의 헌금이나 헌물을 드리고 특별한 축제를 열고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뜻있는 일이리고 생각한다.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때마침 그 주일예배에 귀한 손님들 8~9분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경동의 추수감사절 예배가 더욱 빛나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강남의 대표적 대형교회요 예장통합 교단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정통적이라는 평을 받는 교회의 금년도 장로 피택자님들께서, 최소 6개월간의 피택 수련의 마무리 과정으로서 그 교회와 사뭇 분위기가 다른 서울의 4개 교회를 택하여, 일제히 순회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리고 각자 보고서까지 써내야 한다는 과업을 부여받고 우리 교회 대예배에 오셨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작년도 피택자님들이 오셨고 금년이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하니, 더욱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만장의 성도들이 진심으로 환영의 박수를 드렸다.

예배가 폐회된 후에 저와 동료 장로 몇 사람은 담임목사님(다른 급한 일정 때문에 바로 교회를 나서야 하셨다)의 사전 부탁에 따라, 이 귀한 손님들을 부산한 친교실의 비좁은 식탁으로 안내하여 점심을 나눈 후, 회의실로 올라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서로 궁금한 점을 거리낌 없이 묻고 대답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장로님 한 분이 묻기를 "우리 교회에 오셔서 제일 신기하거나 의외인 것이 있으셨다면 어떤 건가요?"하였는데, 잠시 후에 나온 답이 뜻밖이었다. "이번 수요일이 공휴일(10.3 개천절)이므로 수요예배를 쉰다는, 주보의 공고와 담임목사님의 알림 말씀이 제일 신기했어요."

교회 밖 세상의 공휴일이라고 해서, 정해진 예배를 쉬어도 되는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거 아닐까? 보수적 입장에서는 매우 유다르고 불경스런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할 것 같다. 다만 대답하신 손님의 표정은 그런 방향이 아니라 꽤 신선해 보인다는 의미로 읽혔다. 어쩌면 그 쪽 교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일을, 가볍게 해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색다르게 보신 것 같았다.

목사님들의 직분을 성직으로 표현하며 무제한적이고 성인이나 성자에 준하는 봉사를 미화하는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근로기준법이나 기타 노동관계 법령이 정하는 보호 장치를 직접 적용하진 않더라도 그 정신만이라도 그에 가깝게 운용해드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근로자들이 쉬는 주말의 이틀을 가장 바쁘고 스트레스 심한 상태에서 보내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주중의 하루밖에 쉬지 못하는 교역자님들이 그 쉬시기로 한 날, 성도들 가정의 소천 같은 사정이 있어 장례를 집례하다 보면 하루도 쉬지 못한 채로 그 주의 주말과 주일을 맞아야 하는 수도 적지 않은데, 그런 일이 누적됨은 교회와 목사님, 성도들 누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에는 수요예배를 쉼으로써 목사님들이 휴식을 취하시게 해드림이 맞는 것 같다. 금년에는 그런 일이 두 번(현충일과 개천절)이나 있었다.

박재윤 장로(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 원장,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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