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와 함께 심은 민족의식

[ 3.1운동100주년기획 ] 기독교교육사상가열전 3. 남궁억 <1> 민족의식을 심는 교육자

최태육 박사
2018년 10월 23일(화) 14:31
한서 남궁억.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1934년 5월 30일 '십자가당 사건'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조선총독부 판사 마스무라후미오(增村文雄)가 남궁억(南宮檍)에게 작년 4월 모곡교회 예배당에서 '일한병합', 즉 일제강점을 말하며 대단히 분개하며 울었다는데 이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나는 예배당뿐이 아니라 모곡(牟谷)학교에서 친구들이 왔을 때라든지 언제라고는 할 수는 없으나 일한병합(日韓倂合)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므로…."

남궁억의 대답 속에서 70세를 훌쩍 넘긴 노인의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판사는 남궁억에게 징역형을 포함한 실형을 선고할 수 있는 진술을 끌어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남궁억은 판사가 준비한 질문에 대해 상세한 설명까지 더해 자신의 행동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판사가 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남궁억은 "조선총독의 정치가 좋든 나쁘든 나는 찬성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한때 "일본, 한국, 중국 3국이 서양 제국의 동침(東侵)하는 세력을 막자"고 서로 의견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정작 일본인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배반하고 한국을 침략하였다고 질타하였다. 판사는 할 말을 잊었다. 20대부터 관료생활을 하였던 그는 구한말 일본인들의 한국 침략 논리를 꿰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 판사가 남궁억이 저술한 '동사략(東史略)'과 '조선화(朝鮮話)'에 대해 질문하자 남궁억은 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 이 책을 저술한 목적까지도 숨김없이 말했다.

1924년경 총 4권으로 단군으로부터 3.1운동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의 역사를 담은 '동사략'을 저술하였고, 1929년에 조선역사와 위인들의 전기, 전설을 담은 '조선화', 즉 조선이야기를 저술하였다고 설명한 후 이는 "한국인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에서는 형을 낮추기 위해 조금의 변명을 하기 마련인데 남궁억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일본이 러시아와 맺은 '러일협정'의 침략적 성격을 논박한 사설을 '황성신문'에 게재했다가, 1902년 5월 8일 경무청에서 4개월 동안 고문을 받은 이후 여러 번 구속과 고문을 당한 경험이 많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무궁화를 재배하고 이를 배포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경부터 학교 학생과 교사, 월사금을 내지 못한 학부형들과 함께 모곡학교 소유지에 무궁화 묘목을 심었고, 4년 동안 5000여 개의 무궁화를 경기도,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에 판매하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궁화는 조선민족을 대표한 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많이 재배하게 하여 민족사상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재판정에서 일제의 배신과 침략행위를 질타하고, 주권을 상실한 민족과 압제로 인해 고통당하는 국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숨김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학생과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당당히 밝히는 사람, 바로 이것이 남궁억의 모습이었다.

최태육 박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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