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낮은 곳을 향하는 사람이다

[ 목양칼럼 ]

이기정 목사
2018년 10월 05일(금) 11:45
몇 해 전, 이곳 횡간도교회에 갓 부임했을 때 한 초등학교 친구와 40여 년만에 통화를 하게 됐다. 그는 도심 교회 안수집사로 필자가 섬에서 목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한 것이었다. 한참의 대화 끝에 그는 "얼른 섬에서 도심 교회로 나오라"고 말했다.

최근엔 한 목사님이 설교 중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담임목사 직을 내려놓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 동안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축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아프리카의 어두운 영혼들을 향해 다시 믿음의 길을 떠나려 합니다."

나는 오래 전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십계명'을 읽은 적이 있다. '하나, 월급이 적은 곳으로 가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필자는 40년 만에 전화한 친구에게 "기독교의 정신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거야. 상향이 아니라 하향이 기독교 정신이고, 예수님이 그러했듯 우리도 그래야 해"라고 말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의 화려함과 편리함에 길들어져 아무것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목회자는 더 좋은 사역지를 향해 앞다퉈 모여 들고, 더 영광 받는 곳을 향해 전진해 나간다. 예수님은 늘 빈들이나 사람이 찾지 않는 곳, 소외받고 버려진 곳으로 내려가셨다. 유일하게 올라 간 곳은 예루살렘인데 그건 죽음을 향해 나아간 것이었다.

낮은 곳으로 가자. 낮은 곳은 꼭 오지나 낙도가 아니어도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하늘의 가치를 들고 땅으로 내려가 예수님 정신으로 사는 곳이다. 그곳은 보상이 크다. 혹 이 땅에서 받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우리에겐 천국이 있지 않은가! 이 땅의 수고에 영원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낮은 데로 가자. 아골 골짝, 빈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자.

이기정 목사 / 횡간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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