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흑백논리

[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9월 18일(화) 08:26
과거 우리 사회는 흑백논리에 사로 잡혀 있었다. 다시말해 좌(左)아니면 우(右)를 선택해야 했다. 중간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의미했으며, 회색분자라는 좋지 못한 꼬리표가 붙기 일쑤였다.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논리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같은 사고를 교묘하게 이용해 왔던 것이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은 지연, 학연, 혈연 등을 내세워 자신의 편으로 국민들을 분리하는 편가르기를 일삼아 왔으며, 이에 맞지 않으면 상대편으로 분리해 적대시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흑백논리와 유사한 것이 진영논리이다. 진영논리란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사상, 사물, 사건 등에 대해 한편으로 분리해서 선을 긋는 행위이다. 결국 같은 진영에 속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구분의 기준이 된다. 이 진영논리에 빠지면 다른 진영에 대해 쉽사리 이해하거나 협력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또한 최근 우리 사회에서 팽배해 왔다.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보다는 배타적인 행동을 해왔다.

최근에 흑백논리, 진영논리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논리(정확하게 말한다면 표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에 따라 국민(유권자)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논리를 전개해 왔으나 이제는 국민들이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국민들은 스스로 집단화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적인 유익에 따라 언제든지 이합집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나타나는 세태이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권에 대한 지지율이다. 흑백논리가 주도했던 과거에는 한쪽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고공행진을 하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이에 맞춰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에 서 있는 야당의 지지율에 변화가 없다. 한쪽이 싫다고 해서 반대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중간지대, 혹은 아주 엉뚱한 방향에서 이합집산을 하는 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자신들의 생각 혹은 이익과 다르면 비록 지지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련 없이 과감하게 떠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미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일명 가나안교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나안교인은 기독교인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가나안교인이 1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기독교인 인구가 800만~900만명이라고 기준할 때, 가나안교인은 전체 기독교 인구의 10%를 넘어서는 엄청난 숫자이다. 비록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지만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로 옮겨가지는 않고 있다. 흑백논리로 이야기 하면 이들은 이미 타종교에 등록을 했거나 무신론자로 무종교 인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으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만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의 원인을 한국교회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최근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교회의 이슈가 가나안교인을 양산해 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교회가 교인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는 백이거나 흑, 좌이거나 우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중간지대도 되어서는 안된다. 좌와 우, 그리고 중간지대에 있는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포용력 만이 필요하다.

박만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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