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에 대한 목회적 이해, 우리 교회의 동반자 됨의 목회적 이해

[ 9,10월특집 ] 제103회 총회 주제해설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9월 18일(화) 10:57
민족에 대한 목회적 이해

홍정근 목사(강남연동교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관심 또한 남다른 때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시대를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되어 왔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되고 다문화 시대 시대로 접어든 시점에서 '민족'이라는 개념 사용할 때는 좀 더 섬세하게 유의하며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목회적인 관점에서 민족을 이해할 때는 보다 더 구체적이면서도 교회마다이 상황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



1. 민족에 대한 이해

지금 우리는 다문화 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 다민족, 다인종이 함께 연결되고 섞이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융합을 키워드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단일민족, 한 겨레라는 배타적인 민족의식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보다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민족 개념을 필요로 한다. 성경은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말씀하고 있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땅 끝까지 이르러"(행1:8)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이는 우리가 우리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민족을 이해하고 민족에게 다가가야 함을 요구하신다.



2. 민족과 관련된 용어

우리 사회는 점점 빠른 속도로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다종교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세계 주류 종교가 모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 역시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거기다 주류종교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의 심성에 깊이 뿌리는 내리고 있는 것이 샤머니즘이다.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로 갈수록 사회가 다양화 개인화 되면서 이런 소규모의 종교집단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세상이 점점 다문화 다종교 사회가 나아가면서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현상은 민족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민족을 국민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는 국민과 함께 하는 목회적인 노력이요 시도이다. 목회적 차원에서 보면 민족이란, 가깝게는 국민이요, 더 가깝게는 주민이다. 멀게는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이며, 이웃 나라의 국민들이다.



3. 민족과 함께 한 한국교회

부흥운동으로 깨어난 한국교회는 늘 민족과 함께하는 민족의 동반자로써 민족을 깨우고 민족을 섬기고 민족을 일으키는 일에 앞장서 왔다. 민족의식 고취, 신분타파, 미신타파, 봉건제 타파, 남녀평등사상 고취, 여성의 지위 향상, 근대교육의 확산, 한글의 확산, 윤리와 도덕의식의 고양, 3.1만세운동, 독립운동, 서양문화의 전수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방면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민족 속을 파고 들어갔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전쟁, 경제성장. 민주화 운동, 빈민운동, 통일 운동 등 한국교회는 여러모로 민족과 함께 하기 위하여 씨름해 왔다. 최근 들어 사회분위기의 변화로 인하여 반기독교 정서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교회 역시 이런저런 추행과 세습 그리고 세속적인 성장주의에 향도되면서 국민들로부터 우려와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4. 민족과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

우리 민족은 그동안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우리 민족의 성장과 발전은 경제적이면 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그 모습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한편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민족분단의 아픔과 함께 단기간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와 폐단 그리고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와 같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인하여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령화로 인한 독거노인의 급속한 증가, 성관념 및 질서의 파괴, 성경적 가정의 가치와 질서의 훼손, 다민족 다 인종간의 갈등 증가, 갈수록 벌어지는 양극화, 노숙자 문제, AI로봇의 출현, 가상체험의 현실화, 초연결 사회의 출현과 부작용, 익명화된 SNS의 위험, 피로 사회, 불안증폭 사회 문제,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질서의 붕괴,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의 출현 등 실로 다양한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남북 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남북문제와 관련하여 한치 앞을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통일을 향한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교회가 민족과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의 소명

1) 민족에게 행복을 주는 교회 : 현대인들이 영적으로 목말라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을 찾아 방황하고, 하나님의 신비를 찾아 목말라고하고, 은혜의 충만함을 찾아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해 주고, 마음의 안식과 행복을 찾게 해 줄 복음이다. 복음은 영적 부흥을 통하여 우리가 민족에게 나누어 줄 수 있고 주어야 하는 선물이다.

2) 민족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교회 : 교회는 사명의 공동체요 비전의 공동체이다. 복음은 우리 삶이 얼마가 가치 있는 삶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동시에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지, 무엇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보람 있는 삶인지, 무엇이 우리가 붙들어야할 비전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즉 하나님 나라와 복음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사는 삶, 이것이 우리가 민족을 행하여 주어야 하는 비전이다.

3) 민족에게 회복을 주는 교회 : 세상 어디에서 참된 안식, 회복은 없다. 교회가 주어야 한다. 교회가 안식을 주고, 회복을 주고, 치유를 주고, 소망을 주어야 한다.

4) 민족에게 관계를 이어주는 교회 : 교회는 생명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이다. 영적 부흥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행2:41~47)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꿈이 통하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무너진 관계가 복원이 되었다. 이처럼 교회는 우리 민족에게 소외되고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5) 민족의 융합을 이끌어 주는 교회 : 이 시대의 연결을 넘어 융합, 융복합의 시대이다. 문화가 섞이고 기계와 기계가 섞이고, 기계와 사람이 섞이는 시대이다. 체제와 땅이 하나 되고, 경제와 정신이 하나 되고, 사람이 진정한 통합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지혜롭게 갈등을 해소해 가야 한다. 교회가 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통합을 시대를 열어 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선교라는 협의의 사고에서 민족의 평화통일과 융합이라는 거대한 안목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6. 영적 부흥으로 민족과 함께 하는 목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영적 부흥이다. 성령이 이끌어 가시는 부흥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는 것은 첫째 우리 안에 부흥을 사모하는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둘째, 교회와 성도들이 공적 신앙으로 무장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셋째, 개교회중심 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동반자 됨의 목회적 이해.

홍성호 목사(순천제일교회)



제103회기 총회의 주제는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 이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로, 그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 교회가 "다시" 민족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는 2018년,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라는 특수한 여건 가운데서, "평화의 제전"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리면서 남북이 하나 되는, 뭔가 새로운 기대를 가져도 좋을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이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평화", "통일"이라는 오랜 바람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음을 보고 있다.

교회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우리 교회가 그동안 일정 부분, 세상이 교회를 두고 이야기하는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 치우친 감이 있지 않았나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 가운데 면면히 흐르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우리 교회는 그 원천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신앙의 차원과 이웃과 세상을 향한 수평적 차원의 균형이라는 일종의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결국 103회기 총회 주제, "영적 부흥"과 "민족의 동반자 됨"이라는 이 두 개의 거대 담론을 하나로 묶어 가면서, 교회와 세상 그 둘을 이어가는 연결고리를 다시금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 현실직시, 그리고 돌봄 (Caring)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 직시'는 곧 내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주제 성구 히브리서 13:12~13은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 직시'라는 차원에서 단순히 선언적 의미만을 지닌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오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사역의 방향성을 말하고 있다고 할 때, 그렇다면 그것은 오늘 우리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를 알면 오늘이 새로울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씀을 오늘 우리 교회가 터한 이 땅에 두고 살펴보면, 우리 교회가, 그 교회가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또한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이제 그 세상을 향해 '돌봄(Caring)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공감(Compassion)과 나눔(Sharing)

우리 교회가 터한 세상을 향해 나아갔을 때, 그 세상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동반자 됨'의 그 다음 단계이다. 무엇보다도 다시금 '교회와 신학의 공공성'을 묻게 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복음을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본분이기 때문에도 부지런히 복음을 그 현장에 맞도록 상황화·맥락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적어도 오늘 우리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부름 받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벧전 2:9) 여기 세우셨다면, 바로 그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2류 농부는 씨앗에 신경을 쓰지만 1류 농부는 토양을 바꾼다는데, 우리 교회가 터한 그 토양을 기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공감(Compassion)과 나눔(Sharing)"의 과정이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이 이 땅,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런데 여기 "불쌍히, 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영어 성경에서는 "felt compassion"이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그 "compassion"이란 com(함께)라는 말과 passion(고난, 수난)이란 말의 합성어로, 우리가 터하고 있는 세상으로 나아갔더니 거기서 만나는 우리 이웃, 그리고 이 민족의 역사적/현실적 고난이 새롭게 눈에 들어와 아예 그 고난에 동참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치유(Healing)와 회복(Recovery)

특히 "동반자 됨"과 관련하여 신학과 교회의 공공성을 다시 묻게 되는 영역이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요약(마태 9:35)을 보면, 우리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면서 가르치시고(Teaching),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Preaching),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Healing) 세상을 섬기셨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의 영적 부흥과도 그 맥락을 같이하는 역사적 경험이기도 하다.

우리 교회는 다시금 말씀에 기반을 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말씀과 기도는 오늘 우리의 현실 가운데 거룩하지 않은 영을 분별해 내는 동시에 그것을 치유와 회복으로 이끄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 곧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에서 공적인 삶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세상이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염려와 두려움, 좌절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를,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 땅에 보냄 받았음을 인식하고 있다면, 주어진 공동체의 회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야할 것이다.



4. 구원 (Salvation)

'동반자 됨', 분명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는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돌봄, 공감과 나눔, 그리고 치유와 회복의 전 과정 속에서, 세상과 함께 하며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하면서도 본연의 거룩성을 유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의 사명과 목표는 복음을 증언함으로 세상이 구원을 받는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를 교회 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땅 가운데 구원, 곧 '하나님의 샬롬'을 선포해 나가는 것, 본연의 의미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참여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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