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22일

[ 가정예배 ]

2018년 09월 14일(금) 10:39
월-고난의 주인이신 하나님
본문: 욥 33:8~33
찬송가: 337장

욥은 지금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겪으며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고난에는 특별한 이유들이 있고, 유익이 많아서 사람을 크게 한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자녀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했다. 욥은 하나님이 특별히 아끼시는 자녀였다. 이는 자녀들이 강한 믿음을 얻어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하나님은 고난을 주실 뿐만 아니라 고난으로 자녀들이 힘들어 할 때 함께 아파하시고 좋은 동무를 보내셔서 위로하시는 분이다. 본문의 엘리후는 영적으로 탁월한 해석자이며, 고난을 진단하고 처방하여 욥을 도우라고 보낸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욥이 받은 고난의 이유와 유익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면 쉽게 넘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주신다. 바울도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이 고난 당했을 때 디모데를 보내 위로했다. 그러면 엘리후는 어떻게 진단했을까?
 
고난에 주의사항이 있다고 한다. 고난받는 자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욥기 33장 9~11절을 요약하면 지금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 "나는 깨끗하고 순전한데 하나님이 억지로 나의 죄를 찾아 원수처럼 취급하십니다"라고 불평하고 있다. 이에 엘리후는 "고난의 주인은 하나님으로 그분이 고난을 주셨다. 하나님만이 고난의 해결자시다. 그런데 그분을 원망하면 고난은 결국 길어질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원망치 말고 고난을 이길 믿음을 구하고 인내하라고 처방한다. 즉,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믿음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럼 고난의 유익은 무엇일까? 첫째, 악한 행실과 교만을 뽑으려는 것이다. 악행과 교만의 쓴 뿌리는 너무 강해서 신앙생활을 해도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고난이 아니면 악한 행실과 교만은 뽑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쓴뿌리를 잘 모른다. 하나님만이 아시기에 지옥에 가지 않도록 고난을 통해 뽑으려는 것이다. 둘째, 영혼과 생명이 더 빛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이 정금같이 빛나길 원하신다. 믿음의 빛은 공격을 받거나 고난을 받을 때 더 강하게 빛난다. 이렇게 믿음이 빛날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갑절의 축복이다. 욥은 고난 이후 영적, 재정적, 가정적, 사회적으로 갑절의 복이 넘치는 큰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고난은 자녀를 크게 세우는 밑거름이다. 고난을 만나면 고난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원망치 말고 더 믿음을 구하여 큰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믿음 잃어버리지 않고 이 길 수 있도록 더 큰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용 목사/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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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그릇에 가진 보배
본문: 고후 4:7~10
찬송가: 484장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자신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아는 만큼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뵐 때 자신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될 수 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알기 전 살기등등하게 예수님의 제자들과 모든 신자들을 위협하며 결박해 잡아오려던 다메섹도상에서 큰 빛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난다. 성령충만함을 받아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가 오히려 그 복음(예수)을 전파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아 사역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더욱 알게 되면서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신앙고백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질그릇에 가진 보배에 대한 은유적 비유로서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그가 체험하며 깨달은 두 가지를 고백한 말씀이다. 첫째, 질그릇과 같은 바울 자신을 특히 알게 됐다. 둘째, 그 안에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보배임을 알았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과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떤 보배와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참 보배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질그릇이란 '보배'와 너무도 대조되는 인간이 상대적으로 가치 없는 것으로 비유되는데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영광에 대조되어 가장 연약하여 잘 깨어질 뿐만 아니라 싸구려 그릇의 대명사인 질그릇 같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그 앎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지식이 된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며,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을 나타내며 인간의 교만과 자랑을 방지하려는 뜻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고백했으며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했고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 겸손한 고백을 했다.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였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우리 안에 모셨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이며,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가 됐다. 가장 보배롭고 존귀하신 예수님이 내 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과 사랑으로 보배이신 예수님만을 높이는 예배자가 되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비하하거나 과소평가나 의기소침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전능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주의 권능 힘입어 넉넉한 승리자가 되자.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더욱 알게 하시고 주의 쓰심에 합당한 깨끗하고 겸손한 그릇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이선 목사/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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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님이 세우시다
본문: 행 4:29~37
찬송가: 208장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다. 주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다. 만물의 주가 되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엄청난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다.
 
주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 조직이 아니다. 인간끼리 다퉈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세상 권세를 쥔 마귀와의 싸움 가운데서 결정나는 것이다. 세상 권세 잡은 마귀를 이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교회를 세우시는가? 성도 만들기를 하신다. 계시의 영이신 성령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라 시인하게 하고, 주로 영접하게 하신다. 이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 다음은 거듭난 자녀를 양육하신다. 성숙은 예수님과의 연합이 실제 되는 믿음이다. 이렇게 되려면 성령께서 나의 육을 죽이시고 주로 살게 해야 한다. 따라서 무시로 성령을 구하며, 인도함을 받을 줄 아는 자가 성숙하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성령 충만하고 말씀이 육이 된 제자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갔는가?
 
첫째는 기쁘고 밝은 이들이 되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이 은혜로 자녀 삼아 주심과 돌봄이 분명해진다. 하나님과 친구처럼 친밀해 진다. 하나님이 지은 환경 속에 호흡하고 있음이 노래가 된다. 둘째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한다. 나의 생명, 건강, 재능, 소유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고자 하는 청지기가 된다. 셋째는 사랑의 사람이 된다. 성도들을 예수 보혈의 피를 나눈 형제, 자매로 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랑한다. 원수도 사랑한다. 넷째는 영적분별력을 갖는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임금 되시는 줄 알고, 재상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다. 이를 두고 주님은 "사탄이 너희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돌이켜 형제를 굳세게 하는 지도자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하셨다. 무엇이 영적인지, 육적인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다섯째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능력 전도자가 된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 주님이 제자를 통해 사역하신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다.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교회다. 기쁜 천국이요, 거룩한 성전이요, 존귀한 주님의 몸이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사랑이 넘치는 한 가족이다. 우리 가정이, 구역이, 교회가, 한국교회, 열방의 교회가 이렇게 되도록 기도하자.
 
오늘의 기도
성령 충만케 하시고,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 되게 하소서. 가정과 교회를 주님이 세워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호병기 목사/봉화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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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다윗을 위하여
본문: 사 37:33~35
찬송가: 545장


유다가 위기에 처해 있다. 앗수르와의 전쟁을 앞두고 앗수르의 왕 산헤립과 그의 충신 랍사게가 유다를 멸시하고 선전포고를 한다. 유다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우리도 이런 경우를 당할 때가 있다.
 
가족들이 힘든 일을 겪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그 때 필요한 게 믿음이다. 믿음은 성경말씀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 사람들 보다도 못할 때가 있다. 불신자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의지하여 환난을 극복해 나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속담 보다도 못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유다가 어려운 중에 있을 때 말씀하신다. 33절은 앗수르가 침략하지 못하겠고 유다의 성읍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무기요 힘이 된다. 34절에도 앗수르 군대가 다시 되돌아갈 것이라고 예고한다. 하나님은 대적과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구약시대에는 성벽을 많이 쌓는 조건은 높은 곳에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성을 쌓아도 소용없다. 가장 높은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다 관장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승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산성이 되시고, 요새가 되신다. 우리 가정도 염려할 필요 없다. 우리는 믿음이 약해서 항상 미리 염려한다. 염려하지 말고 미리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피성이며 안식처가 되신다. 이어서 35절에는 특별한 말씀이 나온다.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다윗을 위하여'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와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윗이 언급된다. 이사야와 히스기야는 주전 750~680 의 연대이고 다윗은 주전 1107~1037의 연대이다. 무려 350년 전의 인물이 다윗이다. 그런데 그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신다.
 
즉, 350년전의 다윗의 믿음을 기억하시고 다윗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350년이나 지났으나 다윗의 눈물과 기도와 충성을 기억하신다. 다윗으로 인하여, 다윗의 행적과 의로움으로 인하여 현현하신다. 오늘 우리 가정에서 나의 역할이다. 내 믿음의 씨앗이 후대의 후대까지 열매로 나타난다.
 
다윗을 위하여 그러하셨듯이 나를 위하여,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 가정이 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뜻을 펼쳐 나가셨던 것처럼 우리 가족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행하여 주시옵소서. 반석같은 믿음의 식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용 목사/소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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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무능함을 선포하는 지도자
본문: 대하 20:1~23
찬송가: 375장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따랐던 유다왕 여호사밧은 그 땅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레위사람과 제사장과 방백들로 여러 성읍에 두루다니며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라가 강성해지고 풍요로움을 누리는 은총을 받게 된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관계를 맺고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동맹하여 아람을 상대하여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전했다가 패전하여 아합은 전사하고 여호사밧은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귀국하게 된다. 이 일에 대하여 선견자 예후에게 책망을 받은 여호사밧은 다시 나가서 두루 전국에 다니며 그 자신과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한다.
 
하지만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의 침공을 받게 되고 여호사밧은 이를 크게 두려워하는 중에 여호와께 간구하고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했고,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금식하며 합심하여 기도하여 왕의 요청에 부응했다. 왕은 유다백성 남녀노소가 지켜보고 있는 중에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한다. 적의 대군이 지척까지 들이 닥친 마당에 대책없어 보이는 왕의 기도는 백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허황된 말로 백성을 기만하여 거짓 평강을 선포하는 대신 현실에 대한 정직한 고백으로 백성들과 위기를 직면하고 공유하였을 때, 그것은 그저 집단적 혼란과 두려움으로 허망하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선지자 야하시엘을 통한 하나님의 개입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 백성이 아침에 일찍이 드고아들에 나가 두려움과 염려 대신에 이 노래와 찬송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은 그 전쟁을 시작하셨다. 적들끼리의 죽고 죽이는 전쟁으로 큰 승리를 거둔 백성은 사흘동안 전리품을 거둬들이며 나흘째는 브라가 골짜기에서부터 여호와를 찬송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죽은 것을 살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고 또 스스로를 기만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여호사밧은 왕으로서 백성들 앞에서 하기 어려운 고백적 기도를 했다. 경악할만큼 솔직했던 왕의 기도가 백성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일으켰고 거기서부터 온전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하나님 앞에 세우심을 받은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은 여호사밧 왕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철저히 무능한 자임을 스스로 정직하게 고백하며 그가 속한 공동체 앞에 나아가 저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지도자들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시고 이 땅의 어려움을 근심하는 대신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궁천수 목사/낙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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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 믿음
본문: 마 5:8~10
찬송가: 391장

믿음은 큰 믿음과 작은 믿음으로 분류한다. 큰 믿음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큰 믿음이다. 겨자씨는 작은 씨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씨가 자라면 모든 풀보다 커지는 특성이 있다. 나의 작은 모습이 작은 겨자씨와 같을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고,믿음이 있으면 틀림 없이 큰 겨자나무로 하나님은 자라게 하실 것이다. 작은 믿음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8장 23~28절을 보면 바다에서 만난 풍랑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파도가 일어나 배를 덮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예수께서는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급히 깨운다.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나신 후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제자들을 책망하신다. 제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믿음이 적은 연고이다. 하다못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가 믿음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쁨의 영광과 찬양을 드리기 위함이다. 강한 믿음을 소유하자.
 
로마의 백부장 지휘관인 그는 하인의 병을 고치고자 했던 믿음의 소유자였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백부장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하인을 사랑하는 믿음이 있었다. 노예는 인권존중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노예는 쓰러져도, 병들어도 누구 한 사람 관심이 없다. 그러나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게 되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고백할만큼 하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우리 모두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믿음이 하인을 낫게 했다.
 
둘째, 응답의 믿음이 있었다. 신앙인의 중요한 포인트는 확신이다.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과 신뢰감을 얻는 것이다. 백부장은 예수님께로부터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응답을 얻게 된다. "너의 하인을 내가 고쳐주겠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병이 나을 줄 아는 믿음이 백부장에게 있었다. 그리고 기적을 베푸시는 분인줄 믿었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은 그런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이셨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찾아온 백부장을 향한 주님은 칭찬의 메시지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다.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예수님의 그 한마디의 말씀을 그는 믿고 순종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순간순간 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큰 믿음이다. 순종의 믿음이다. 큰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우리 안에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준 목사/곡성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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