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달라집시다!

[ 논설위원칼럼 ]

김혜숙 목사 ches@pckworld.com
2018년 09월 10일(월) 10:00
몇 달 전 미투운동이 한창 우리 사회를 강타할 때,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한 기도회에서 목회자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피해여성의 사례를 직접 듣게 되었다. 피해여성은 가해목사로부터 세례도 받았고, 가해목사가 결혼주례는 물론 그 여성의 두 자녀의 이름까지 지어줄 정도로 신뢰하고 따르던 영적 아버지였다. 따라서 조금의 의심도 없이 가해목사가 초대하는 대로 그의 자동차를 탔고, 외곽으로 이동한 뒤에 차안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피해여성은 그로 인해 사랑하는 두 자녀와 가정을 잃었고 매일매일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성폭행피해자의 위치에 서 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가 이어졌다. 가해목사로부터 그 피해여성은 한 번이 아니라 수년간에 걸쳐 수없이 많은 성폭행을 당했고 낙태수술도 두어 차례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었더라도 왜 수년간이나 가해목사에게 끌려만 다녔을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교회 성폭력의 대부분은 그루밍(Grooming) 성범죄라고 한다. 그루밍 성범죄는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사전에 신뢰를 쌓은 뒤 자행하는 성범죄를 말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성적가해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길들이고 피해자가 이를 벗어나려고 하면 회유, 협박하면서 폭로를 막는다고 한다.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성폭력인줄도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길들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성폭력의 문제에서 길들여지는 것의 위험성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길들여짐의 위험성은 단지 성폭력의 문제에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보통 남성들보다 의존적이고 수동적이고 감정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기보다 후천적인 사회화의 영향이 크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대표는 남자가 부대표는 여자가 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자가 남들 앞에 나서면 무슨 여자가 얌전하지 못하게 나선다고 핀잔을 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어도 적어도 두세 번은 사양하는 것이 겸손의 미덕이라 배웠다. 우리는 항상 아버지가 먼저고, 어머니는 늘 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우리 여성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다듬어지고 길들여졌다.

그러한 길들여짐이 신앙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여성들은 교회의 부목사로는 괜찮지만 담임목사로는 청빙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예배반주는 여성들이 하지만 주일예배 찬양대 지휘자는 남성이길 바란다. 여성안수가 허락되었지만 여전히 교회당회에는 남성들만 모여 있다. 그렇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교회안의 모습과 다르게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양성평등한 의식과 문화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교회도 이젠 달라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스카 와일드가 쓴 '거인의 정원'에 나오는 거인의 집처럼 될지 모른다. 거인은 아이들이 자기 집 정원에 와서 노는 것이 못마땅해 내쫓았는데 그러고 나니, 그 정원엔 일 년 내내 봄이 오지 않고 눈과 서리만 내리는 추운 겨울이 된 것처럼, 교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여성들이 그리고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텅 빈 예배당을 목도하게 될 날이 다가올지 모른다. 본 교단의 교인 수는 지난 3년 동안 거의 10만 명이나 감소했다.

김혜숙 목사/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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