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위한 제언

[ 논설위원칼럼 ]

유재봉 교수
2018년 09월 03일(월) 10:00
최근들어 사회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고, 기독교계의 정치적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과거 기독교인의 정치참여가 기껏해야 선거에서 투표를 행사하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 이제는 일련의 퀴어 축제에 대한 기독교 단체들의 반대 집회, 광복절 구국기도회 등에서 보듯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의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온 세계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 사회 참여나 정치참여를 통해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것은 마땅하며,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고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플래카드(placard)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 신분에 걸맞게 언어, 생각, 태도, 행동 등을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따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한없이 자애롭게 혹은 무자비하게 보이기도 하고, 정의롭게 혹은 부정의하게 비치기도 하며 품위 있게 혹은 무례하게 인식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식하면서 다음 몇 가지 점을 고려하여 잘 처신해야 한다.

첫째, 참여하고자 하는 사회 혹은 정치 문제가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사소한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현저하게 침해 혹은 왜곡하거나 교회를 탄압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아디아포라(adiaphora)에 해당하는 것에는 지나치게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사회적·정치적 이슈마다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전략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나 정치참여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샬롬(shalom)을 누리고 정의를 이 땅에 편만하게 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념이나 주장을 관철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는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아마 순수하고 선한 동기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에 열심을 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고 정치적 메카니즘에 빠지게 된다. 기독교적으로 중요한 이슈도 그것이 정치나 이념적 문제와 결부되면 혼탁한 논쟁에 휘말리게 되고, 기독교계가 또 다른 이해집단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셋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독단적인가? 기독교인이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수단과 방법의 합리성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문제에 참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과 방법에서도 교양 있고 성숙한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 못지않게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일과 방식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를 부단히 성찰 필요가 있다.



유재봉 교수/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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