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 기자수첩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8년 08월 20일(월) 10:47
누구나 거절을 당하면 서운하다. 그렇다고 애매하게 거절을 하면 상대방은 계속 포기하지 못한다. 안되면 안된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상대방도 새로운 대안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에게 '희망고문'은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고 비겁한 갑질일지도 모르겠다.

그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결정권이 없으니까요".

제103회 총회 여성총대가 30명으로 확정되고도 한참이 지나서 한 여성 목회자와 나눈 이야기다. 그는 결과에 대해 "굉장히 유감스럽고 굉장히 실망스럽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걸어보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고. 또 다시 할당제 '법제화'를 요청하고, 유감을 표명할 계획이라고. 그렇게라도 노력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 제102회 총회에서 여성총대할당제가 결의되면서 여성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의사항이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해석되면서 24개 노회를 제외한 43개 노회는 여성총대를 단 한명도 뽑지 않았다. '최소 67명 이상'의 여성총대는 한낮 꿈으로 끝이 났다. 우려했던 상황이었고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에 대해 누구는 "여성총대 30명은 총회 사상 처음"이라며 고무적이라고 했고, 누구는 "시작이 반이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 없다"고 '천천히'가라고도 충고했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총대하는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다'다. 그렇다면 "노회와 교회를 대표해 총회의 주요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투표할 수 있는 자격을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갖자"는 말도 옳은 말이다.

헌법해석이 어쨋뜬 여성들은 계속적으로 '법제화'를 위한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공방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적어도 그 시간이 여성안수법제화만큼의 길고 지리한 싸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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