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를 기억하며

[ 4인4색 ]

정인철 장로
2018년 08월 29일(수) 10:00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선 매일 동일한 시간에 울리던 교회 종소리가 알람 시계 역할을 했다. 새벽마다 동네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논밭을 돌보기 위해, 어떤 사람은 아침밥을 짓기 위해, 어떤 사람은 학교에 가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특히 주일에는 예배 삼십분 전에 한 번, 정시에 한 번 어김없이 종이 울렸다. 종탑 근처에 사는 집사님이 종지기를 자처해 20년이 넘도록 종을 쳤는데, 주일이면 가끔씩 나와 친구는 종을 쳐보고 싶어 예배 한참 전부터 종탑 아래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집사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우리는 번갈아 추에 길게 달린 줄을 힘차게 잡아당겨 종을 울렸다. 성인이 돼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 종소리는 일상의 한 부분이 돼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깨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확실한 알림이었다.

이제 종을 울려 예배시간을 알리는 교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소음의 홍수라고 말할만큼 어딜 가도 조용한 곳이 없다보니 오히려 침묵이 종교적 메시지를 대신 전하곤 한다. 때론 TV, 오디오, 스마트폰 등의 각종 미디어의 사용을 중단하고, 고의적인 침묵을 갖는 일이 나의 일상을 정돈하고 순수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종소리는 이제 추억 속 그리움으로만 남아있다.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그 소리가 그립기도 하나, 종이 사라진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는 여전히 각자의 마음을 울리는 종소리가 있다. 이따금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 소리는 좋은 순간만이 아니라 어둡고 아픈 시간을 지날 때에도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한다.

필자가 섬기는 순천중앙교회의 마당 한 가운데에도 아주 오래된 교회 종이 종탑과 함께 전시돼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유물이 돼버렸기에 그 소리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갈 때마다 나는 그 종을 보며 들리지 않은 종소리를 기억하고 스스로를 깨운다.

종소리에 대한 추억이 없는 아이들이 마당의 종탑 근처에서 뛰어 노는 것이 보인다. 종탑은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어느 작가의 작품이지만, 아이들은 그 위에 거침없이 올라타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리고 아무도 아이들을 말리지 않는다. 후에 아이들이 커서 교회 마당의 종을 놀잇감 중 하나로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정인철 장로

순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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