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7월 월례회 말씀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18년 07월 05일(목) 10:00
7월

김운용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찬송: 80장

성경: 시 45:10~17, 롬 12:1~2

말씀: 예배, 교회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보석

합심기도: 내가 살아있는 예배자가 되고 예배의 승리자가 되도록, 우리 교회 속에 영광스러운 예배가 회복되고 보존되도록



예배하는 자리는 실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특별하신 사랑을 입고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예배하는 자리에서 시간을 때우며 단지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고, 온통 쓰레기로 채워 넣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배의 본질과 예배자 됨의 축복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언제든 일어납니다. 니케아 신조가 알려주는 대로 "우리는 천지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한분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며, 그분을 예배하는 예배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라 자손들의 사랑의 노래인 시 45편은 왕의 결혼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기쁨과 환호로 가득한 자리에 서있는 신부에게 권면하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시 45:11). 그러면서 모든 것을 잊고 그 왕에게 집중할 때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 것이라고 권고합니다. 예배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 가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드리는 진정으로 올려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 예배는 최상의 것, 최고의 것을 올려드려야 하는 나드림의 예배입니다. 예배는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도 아니며 은혜를 받기 위해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예배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선물일 뿐이며 그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진정한 예배는 우리가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롬 12:1). 예배자 자신을 포함하여 예배 가운데 행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만족을 얻고 즐겁게 되려는 나 중심의 예배관에서 벗어나 예배자는 나의 최고의 것을 드리려는 자세와 진지한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 이것은 제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이 고백으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예배의 자리에서 가장 커다란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잡념을 포함하여 다른 것에 '사로잡힘'과 '매너리즘'입니다. 일단 그 늪에 빠지게 되면 예배의 능력과 신비는 결코 맛볼 수 없기에 진정한 예배자가 되려면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한군데로 모아져야 바로 드릴 수 있는 '집중점'(point of concentration)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예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 가운데 하나는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하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자리는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하늘의 신비와 영광, 능력이 펼쳐지는 자리가 됩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익숙함에 빠져드는 순간 희열, 신비, 감격, 기대감, 생명력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됩니다. 익숙함은 예배도 죽이고 예배자도 죽입니다. 그러므로 익숙함과의 결별은 예배자가 순간순간 취해야 할 행동강령입니다. 교회는 예배를 위해 부름 받았고 예배를 위해 존재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가장 중심 되는 목적은 구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성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찬양과 영광,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의 특권이자 소명이며, 바른 예배를 지켜가는 것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입니다. 영광스러운 예배를 보존하기 위해서 교회는 생명을 걸고 싸워왔으며, 그러한 노력이 약화되는 곳에서 교회는 언제나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를 공동체의 가장 중심적인 활동으로 삼아왔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쳐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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