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종교인

[ 주간논단 ]

안옥섭 장로
2018년 05월 02일(수) 16:33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는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말씀이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도 부족한데 각종 분쟁과 탐욕에 의한 다툼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실로 교회의 위기가 도래한 것 같다. 교인이 줄어들고 재정이 늘지 않음도 위기지만 교회가 복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7장 6절엔 미래의 교회를 예견이라도 한듯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것들이 대비되어 있다. '거룩한 것, 진주'와 '개, 돼지'가 선명하게 대비돼 있다. 여기서 거룩한 것, 진주는 기독교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제자들과 교회를 가리키고, 개와 돼지는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대적하는 이방인과 이교도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은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여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온 자들 중에 여전히 옛 생활(유대교적 율법주의)에 젖어 있는 자들을 향한 질책과 경계의 표현으로 이 말씀을 사용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의 궁극적 상태인 영생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들을 '개'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상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교회 안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위장을 하든, 세상에서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하든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을 성경은 개와 돼지로 지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생명의 양식을 먹은 우리들의 근본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원래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고 복음에서 유리된 자였다.

어쩌면 가나안 여인(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처럼 개의 신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자'라는 이분법적 기준으로만 자신, 이웃, 역사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러면 고집스럽고 왜곡된 종교적 신념에 갇혀 있는 종교인으로, 복음의 거룩한 것과 진주를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거룩한 진리의 복음을 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개와 같은 우리가 그 거룩한 복음의 진리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진주와 같은 소중한 은혜의 양식을 먹지 못했다면 우리 역시 이 역사 속에서 내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는 돼지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는 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먹어 그 양식과 그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 앞에 개였고 돼지였는데,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도로 변화한 것이다. 바로 희생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내주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은 그래서 앞의 티끌과 들보의 비유와 연결이 된다. 우리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을 비판하는 우리는 귀한 것을 귀한 것인지 모르고 함부로 대하는 개와 돼지와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자 기도에는 반드시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은혜로 구원받았음에 감사함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삶의 실천에는 남들의 치부를 드러내 비판하지 말고 그 부분들까지 보듬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비난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거룩함의 담을 쌓고 상대와 세상을 불결한 개와 돼지로 취급하고 있음에 있다.

'상대방을 부정과 불의로 사탄과 이단이라고 정죄한다고, 당신이 거룩한 정통이 되는 것이 아니다'란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앞에 마음을 토하는 자가 되느냐 아니면 그냥 종교인이 되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안옥섭 장로

전국장로회연합회장ㆍ강서갈리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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