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아름다운 전원 교회

[ 목양칼럼 ]

우태욱 목사
2018년 04월 03일(화) 15:01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아름다운 전원의 교회.' 필자가 섬기는 올 해 111주년을 맞는 고읍교회에 누구든지 전화를 하면 들을 수 있는 멘트이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고읍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사용하고 있는 교회의 정신이고 모토이다. 어찌보면 은혜, 사랑이라는 말은 믿음 안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신앙의 내용이요 덕목이지만 이것이 필자와 교회의 목표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필자가 고읍교회에 부임한 것은 목사 안수를 받은 바로 다음 해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또 알 수도 없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동문의 소개를 받아 가게 된 고읍교회는 한마디로 분쟁 직후의 어수선한 교회였다.

서울노회 문제 1호 교회로 소문났던 교회는 필자가 부임하기 두 달 전 전임목사가 교회에서 분쟁에 시달리다가 결국 떠나게 되었고 70여 명의 교인은 둘로 나뉘어서 30, 40명의 교인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교회에 부임하게 된 후 매일 새벽마다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확신으로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은혜와 사랑의 회복'이었다.

그 후 일 년 동안 매달 제직회를 할 때마다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성도들에게 제안한 한 가지가 바로 목사 앞에 와서 말하기였다. 대부분 교회 분쟁의 원인은 목사 앞에 와서 말하지 않고 뒤에서 말하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문제가 있으면 당당하게 목사를 찾아와 앞에서 이야기하면 되는데 뒤에서 수군수군대며 "우리교회 목사님은 다 좋은데" 혹은 "우리 교회는 다 좋은데"하며 원망불평을 늘어놓기에 결국 문제로, 어려움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기실 필자의 교회의 분쟁의 원인도 들여다보면 바로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슨 문제이든 터놓고 이야기합시다. 목사의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구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설명을 드려 오해를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위한 열린 목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처음 2년 반 동안 목회가 너무나 어렵고 힘겨웠다. 한번은 대심방을 하는 중에 그 가정의 여집사님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앞에서 말하라 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번 주 설교는 저희 가정 들으라고 하셨죠?"라고 하는 것이다.

어려운 교회 목사라면 한번쯤 들었을 법한 물음이다. 순간 말할 수 없이 당황했지만 "집사님! 목사가 한 가정 들으라고 설교를 준비한다면 어찌 목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것 아니니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라며 설명을 드린다.

어떤 집사님은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식당에 들어갔더니 목사에게 다짜고짜 "목사님 왜 아무개 집사님은 악수하실 때 3번 흔들어 주시고 우리 남편은 한번만 흔들어 주십니까?"하고 따져 묻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악수할 때 손을 흔들지 않는데 이 또한 얼마나 황당한 물음인가?

"집사님 죄송하지만 손을 흔드는 것은 제가 아니라 그 집사님이시니 남편 집사님께 제 손 잡아 악수하실 때 세 번 흔드시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지만 필자에게는 참으로 진땀나는 목회의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조금은 험난했던 세월을 보내고 어언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는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룬 오늘의 교회를 바라보면서 필자가 가지게 되는 회고와 확신도 역시 은혜와 사랑이다. 교회도 목사도 성도들도 은혜와 사랑 없이 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오늘의 교회는 이것이 없어 시끄럽기도 하고 이것이 있어 30년이 평안하기도 하다. 사순절의 주님을 묵상하며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주님, 남은 목회도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역사를 주시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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