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로 돌아갑시다

[ 논설위원 칼럼 ]

김지한 목사
2018년 03월 22일(목) 09:46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포토맥 강 건너편에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전사를 기리고 자유와 평등 이념을 고취시키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다. 이 알링턴 국립묘지의 특이한 점은 사병이든 장군이든 묘지 면적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5×10ft(약 1.3평)를 제공하며 정부에서 4×13×42inch 크기의 대리석 묘비를 제공한다. 묘지도 신분에 따라 별도의 구역을 정하지 않고 사용 순서에 따라 장소가 정해진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가장 높고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묘지는 무명용사 묘지다. 유일하게 이곳에서 365일, 24시간 동안 경비병이 엄숙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다. 비록 전장에서 이름 없이 죽었지만 국가가 그의 영면을 지키고 있다. 무명용사의 비석에는 "여기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미국 용사가 잠들어 있다."(Here rests in honored glory an American soldier know but to God.)라고 쓰여 있다. 이들은 무명(unkown)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고 있는(know) 이름 있는 용사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어떤가?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보았는가? 묘역이 장군묘역과 장교묘역, 사병묘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일 전망이 좋은 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지이고 그 아래 공직자묘지와 장군묘지가 있다. 장군묘지는 높은 4단 비석을 설치하고, 장교묘지와 사병묘지는 초라한 비석만 다닥다닥 세워 놓았다. 이런 시신반상(屍身班常)제도는 유교적 반상제도에 기인한 것으로 죽은 뒤에도 끼리끼리 모여 귀족행세를 하겠다는 시대역행적 특권의식이다.

한국교회 안에도 이런 시대역행적 특권이 있다. 다름 아닌 원로목사, 공로목사제도이다. 우리 교단 헌법 제27조 '목사의 칭호'는 목사를 위임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목사, 기관목사, 선교목사, 원로목사, 공로목사, 무임목사, 은퇴목사, 유학목사, 군종목사 12가지로 구분한다. 이런 구분은 서열을 매기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헌법 제2편 제24조 '목사의 의의'는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 그리스도를 봉사하는 종 또는 사자이며,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은퇴목사나 원로목사, 공로목사는 은퇴하여 교인을 양육하지도 않으며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도 아니다.

따라서 목사 칭호를 붙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헌법 제25조 '목사의 직무'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며, 성례를 거행하고, 교인을 축복하며, 장로와 협력하여 치리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은퇴한 목사는 예외가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지도 않고, 성례를 거행하지도 않으며, 치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은퇴한 목사를 목사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현직에 있을 때 '목사는 낮아지는 직분이요 섬기는 자'라고 설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은퇴 후에 교회나 노회에서 원로목사나 공로목사로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난 제102회기 통계위원회 보고에 의하면 우리 교단 은퇴목사는 1078명이며 원로목사는 432명, 공로목사는 677명이다. 원로목사나 공로목사 추대된 목사는 교회에서나 노회에서 여러 가지 특혜를 받는다. 이는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다. 야고보는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약 2:9)고 말씀하고, 사도 바울은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고 말씀한다.

차별은 범법자가 되는 것이며 특권을 내려놓지 않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시대적인 요청이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은퇴한 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신도로 돌아가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과 교회를 섬긴다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기독교적 가치를 보여주고 후배들에게는 본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이 글이 평생 주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그 수고를 지워버리려는 어떤 기관의 논리를 옹호하거나 빌미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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