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8년 03월 20일(화) 15:43

상대를 미워하고, 심지어는 그 상대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기를 비는 행위를 '저주'라고 한다. 저주는 결국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나의 행복을 바라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현재의 상태에서 무너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주를 한다. 총회 헌법에 목사의 직무를 네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 '성례의 거행', '교인을 축복', '치리권 행사' 등이다. 목사는 교인들을 축복해야 한다. 교인의 범위를 넓게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는 권한이 목사의 직무이다. 다시 말해 목사는 교인들이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축복할 수는 있지만 저주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한된 목사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특정인에 대해 저주하는 행위를 쉽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같은 행위를 SNS 상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최근에 열린 거리의 집회에서 '목사'로 호칭되는 분이 단상에 올라 서슴지 않고 저주의 말을 쏟아내 빈축을 샀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역시 이 목사라는 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아멘'이라고 화답하며 동조했다. 물론 이 분이 목사가 아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아니 목사가 아니라도 그렇다. 그 자리가 한국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모였기에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한국교회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임을 고백한다. 가깝게는 가족들과 교우들, 그리고 이웃과 더 나가서는 세계 인류 모두를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며 쉽게 발길이 닫지 않는 구석진 곳까지 찾아가서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로 이끌어 낸다. 내용적으로 봉사와 헌신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만 곁으로 들어난 행동은 사랑과는 멀다. 멀다 못해 저주를 일삼는 그들의 사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게한다.

물론 거리에 나와서 서슴없이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일부이다. 또한 이들을 꼭 기독교인으로 분류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목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이상 '한국교회'란 이름으로 세력화해서 나서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꼭 나서야 한다면 한국교회를 등에 업지 말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혹은 특정 목적만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기독교계의 '저주' 행위는 거리에 나선 특정인들을 제외하더라고, 교계 일각에서도 쉽게 목격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내편이 아니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상대를 저주하기도 한다. 물론 교회의 전통과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극단의 행동은 있을 수 있다. 잘못된 것에 대해 바꿔나가기 위한 극단적인 행동은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을 상대로 저주까지 퍼붓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더이상 한국교회가 일부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지탄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나 집단의 목적을 위해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면 한국교회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사'라는 칭호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기를 경고한다. 목사에게는 '저주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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