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과 어머니

[ 4인4색칼럼 ]

이춘원 장로
2018년 03월 06일(화) 11:57

겨울바람이 씽씽 분다.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참나무 밑에서 가랑잎이 뒤척이는 소리다. 참나무 밑에 소복이 쌓여 있는 나뭇잎 위에 지난 밤 내린 눈이 하얗다. 찬바람 부는 산비탈에서 이 추운 겨울을 견뎌야하는 겨울나무를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아직도 길이 먼데 이 추운 날 나무는 무슨 힘으로 버티고 있을까? 

식물은 생식기관과 영양기관을 갖고 있다. 꽃, 씨앗, 열매를 생식기관이라 하고, 잎, 줄기, 뿌리를 영양기관이라 한다. 그 중에 잎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자연을 통해 직접 양분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기관이다. 잎을 푸르게 하는 엽록소가 녹색 공장을 가동하는 중심에 있다. 하늘을 우러러 선물로 받은 햇빛과 저 깊은 땅속을 흐르는 물줄기를 끌어올려 광합성 작용을 한다. 나뭇잎은 열심히 양분을 만들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운다. 나무줄기와 뿌리를 튼실하게 키우면서도 내일을 준비하는 에너지 공급원이다. 나뭇잎은 자신의 생산 활동이 가장 왕성한 여름부터 가장 소중한 생명하나를 키우기 시작한다. 겨울눈이다. 겨울을 지나 새봄에 피울 잎과 꽃의 작은 불씨를 가슴에 안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나뭇잎에게는 이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요 큰 일일 것이다. 그것이 지구상에서 나무가 가장 오래 사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나무와 인간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나무는 하늘이 주는 햇빛이 없으면 필요한 양분을 만들 수 없다. 한여름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던 나뭇잎이 가을이 깊어지면서 단풍이 든다. 나뭇잎이 가지고 있던 양분을 가지와 줄기로 다 보내고 스스로 잎자루 끝에 떨켜를 만들어 나무줄기로부터 수분공급을 중단하는 것이다. 겨울에 언 땅에서 수분공급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다. 물이 없어 더 이상 광합성작용을 하지 못하는 나뭇잎의 엽록소는 파괴된다. 이때 그 안에 있는 안토시안, 크산토필, 카로티노이드 같은 색소가 나타나 울긋불긋 단풍이 들게 되는 것이다. 

한해의 삶을 정리하고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가을단풍이다. 단풍은 스스로를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물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살리기 위하여 희생의 결단의 증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떠나는 뒷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마치 자식들을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같다. 메마른 나뭇잎은 결국 바람에 떨어져 대부분 그 나무 밑에 떨어져 나무뿌리를 추위로부터 보호해준다. 떠나도 떠나지 못하는, 겨울 날 시린 발등상을 덮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결국은 썩어서 자식들의 밑거름이 되어 어머니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이 나뭇잎이다. 

우리들에게 사랑과 희생의 어머니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며 오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겨울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가랑잎의 소리는 어머니의 음성이다. 자식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시는 어머니의 한숨소리, 오늘도 자식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하신다. 당신의 사랑을 대신하는 어머니를 통해서 참사랑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지만 인간은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으로 후회를 거듭한다. 우리가 자연을 배워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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