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기록하는 집

[ NGO칼럼 ]

배성훈 사무국장
2018년 03월 06일(화) 11:32

주안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시설 중 '애녹재'(愛錄齋)라는 시니어를 위한 도서관이 있다. 그 뜻은 '사랑을 기록하는 집'으로 처음 이름을 지을 때는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을 따서 '에녹 하우스'라고 불렀다.

에녹이 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것처럼 시니어들이 365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다 지역주민들이 이용하는 도서관 이름으로는 너무 성경적(?)이어서 '에녹'을 한자식으로 바꾸고 의미를 넣어서 '애녹재-사랑을 기록하는 집'이 되었다.

실제로 애녹재에서 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작은 자서전 쓰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자서전을 쓰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가족들 간의 사랑을 한자 한자 기록하게 된다. 이름대로 사랑을 기록하는 집이 된 것이다.

도서관을 열고 자서전 쓰기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할 때가 생각난다. 첫 시간에 만난 어르신들은 본인들이 읽고 쓰고 싶어서 모였음에도 이런 반응들이 많았다. '나는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안돼', '글쓰기는 너무 어려워', '밥 먹여주지도 않는 글을 뭐하러 써'.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언론인이었던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중범죄자 교도소에서 한 여성 재소자를 만나 취재를 하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 어린 시절 받았던 책 읽는 교육, 생각하는 교육을 이 교도소의 사람들은 전혀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읽고 쓰는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되고, 부모의 가난까지 대물림하게 되었다. 얼 쇼리스가 깨달은 가난은 단순한 물질의 부족함이 아니라 문화의 부족함이고, 교육의 부족함이고, 생각의 부족함이었다. 그러한 결핍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겠다는 생각도, 목표도 없이 눈앞의 욕망만을 위해 살게 된 것이다.

얼 쇼리스는 언론사를 나와 교도소를 출소한 사람들, 거리의 노숙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만들었다. 바로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로 알려진 곳이다.

사람들은 클레멘트 코스에서 읽고 쓰는 법을 배운다. 인문 고전을 읽는다.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 이들은 인간이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난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얼 쇼리스는 말한다.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인문 고전을 통해 사람들은 생각하는 힘을 키웁니다. 생각하는 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이들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교육은 단순한 인문학이 아닙니다. 희망의 인문학입니다."

클레멘트의 코스의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실천한다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희망이다. 애녹재는 클레멘트 코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희망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기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성훈 사무국장
주안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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