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봄을 꿈꾸며

[ 논설위원 칼럼 ]

김운성 목사
2018년 03월 06일(화) 11:30

며칠 전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참여하고 오는 길에 운현궁 앞을 지나게 되었다. 운현궁 안을 잠시 돌아보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작품은 1933년 4월부터 1934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으로서 김동인의 대표적인 장편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역사 자체보다 흥선대원군이란 인물에 집중하면서 약간은 영웅적 요소를 결합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인조의 삼남인 인평대군의 8세손으로 권력의 핵심에 있던 가문은 아니었으나, 그의 부친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감으로써 왕위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당시 권력을 장악한 안동 김씨들은 쓸 만한 왕족들은 철저하게 견제하면서, 심지어 반역의 낙인을 찍어 제거하곤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하응이 택한 생존방식은 건달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파락호를 자처하고 심지어 상갓집 개라는 치욕적 별명까지 얻으면서도 이하응은 은밀히 조대비에게 줄을 대어 반전의 기회를 준비했다. 조대비는 헌종의 어머니로서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해 많은 고통을 받은 터였다. 결국 철종의 사후에 조대비에 의해 이하응의 아들 이명복이 후계자로 지명됨으로써 하루아침에 천하가 뒤집어졌다. 상갓집 개로 놀림 받던 이하응은 어엿한 대원군이 되어 권력을 장악했고, 나름대로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운현궁의 봄'이란 작품명은 드디어 봄이 왔음을 알린다. 이하응의 가문에 긴 고통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 것이다. 운현궁을 돌아보던 그 날은 기온이 높아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하응을 찾아온 봄을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한국교회의 봄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한국교회도 봄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총회 때마다 펼쳐 보기 두려운 통계며, 사회 제반 영역에서 제기되는 교회를 향한 비판들, 그리고 현저하게 줄어든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한국교회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리라 생각된다.

봄은 겨울을 전제한다. 몸을 부드럽게 하는 봄바람은 차가운 칼바람 후에 온다. 영광 그 이전 이야기는 고난이며, 부활의 앞 페이지의 제목은 십자가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겨울을 통과해야 한다. 겨울 없는 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봄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겨울을 참아내자. 부활을 원한다면 십자가를 지도록 하자. 남들이 우리 어깨에 지우기 전에 우리 스스로 지도록 하자. 새벽을 깨우자. 기도의 무릎을 꿇자. 인내하자. 소박하도록 노력하자. 말을 좀 줄이도록 하자. 흐르는 눈물을 굳이 훔치려 하지 말자. 전도하면서 욕을 얻어먹는 일을 즐기도록 하자. 가끔은 오해를 받아도 굳이 해명하려 하지 말자. 진실은 시간이 가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들어도 예수님 가신 뒤를 따르도록 하자.

우리의 문제는 봄을 기다리면서도 겨울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린 지금 너무 편안하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지만, 고난은 없다. 고난 없는 기독교는 부활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지금 교회와 사역의 현장이 어렵다면 굳이 바꾸려 하지 말고, 그 힘듦을 즐기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바울 사도는 풍부와 비천에 처하는 모든 비결을 터득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겨울을 보내는 데 성공한다면, 틀림없이 한국교회의 봄은 소리 없이 올 것이다.

김운성 목사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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