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의 가상화폐 ①코인보다 기술에 관심을

[ 특집 ] 가상의 세계, 시작에 불과하다

이기홍 교수
2018년 02월 02일(금) 11:05

가상화폐가 꽤 알려졌다. 필자가 몇 년 전 그것에 관해 한 학회에서 발표했을 때에는 가상화폐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이 대략 무엇인지 정도는 알게 된 듯하다.

투기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예상된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정부나 관련 기관이 적절히 규제하는 것은 마땅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는 주로 투기의 대상으로 비춰진 듯하다. 가상화폐는 현재 여러 나라의 화폐와 교환이 가능하므로 사실상 금융 상품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는데, 그것의 거래소는 전 세계에서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증시라고 볼 수도 있다.

가상화폐가 최근 한국에서 주로 투기의 대상으로 비춰진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상화폐 상당수의 가격이 급상승했고 일시적 등락폭도 매우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규모의 투자 손실이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정부는 현행 방식의 거래소를 폐쇄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고, 1월 말부터는 실명확인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경 대응책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에서는 급매물이 쏟아지면서 가격의 급락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blockchain)이라는 분산 컴퓨팅(distrubuted computing) 기술로 구현된 가상화폐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가 기존의 결제 방식와 다른 점은 종이 돈이나 신용 카드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면 모든 거래 기록이 인터넷의 수많은 곳에 흩어져 있으면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장부 시스템에 복잡한 암호로 저장된다. 공증인이나 은행 등 제 3자의 매개 또는 보증을 필요로 하는 기존 지불 방식과 달리, A와 B가 거래했다는 것을 인터넷 상의 암호 서비스를 통해 상호 보증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컴퓨터 코드로 되어 있으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고, 암호화되어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보아 '가상'보다 '암호 화폐(cryptocurrency)'란 표현을 선호하기도 한다. 현재 화폐로서 널리 쓰이지 않다는 이유로 가상 '증표'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간단히 줄여 '코인', '토큰'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하, '코인'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최근 코인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특정 코인보다는 그러한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 기술 또는 더 발전된 기술이라고도 하는 해시그래프(hashgraph) 기술 등에 관심을 두라고 권한다. 특히 '코인을 지금 사면 오를까? 떨어질까?' 식의 질문은 철저히 개인이 판단할 사안이다. 최근 관심을 끈 코인들은 블록체인처럼 인터넷 상에서 자생할 수도 있는 특이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일 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PC나 모바일 기기에 일일이 설치하여 사용하는 운영 체제와 어플리케이션이 인공 지능과 함께 블록체인에서 작동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면 해킹, 개인 정보 침해, 인터넷에서의 금융 사기 등이 현재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므로 여러 사람들에게 혜택이 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지향에 특화된 코인들도 이미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코인에 한정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그것의 구체적 이용 방식에 대해서는 앞으로 매우 다양한 시도들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떤 서비스가 블록체인 기술에 의해 효율이 높아질지, 또는 어떤 서비스가 블록체인 기술로만 구현 가능할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은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큰 부를 거머쥘 지도 모른다.

얼마 전 출범한 한국블록체인협회의 회장은 공학도 출신에 장관까지 역임한 바 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제 2의 반도체', '제 2의 인터넷 혁명'을 이끌 기술이라고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20세기 3차 산업까지의 경험만을 기준 삼아서, 아직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21세기 4차 산업의 가능성을 미리 예단하고 막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시각이 최근 한국 사회가 보여 준 코인과 관련된 파편적인 관심을 넘어, 미래의 핵심 기술이 될 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심층적 이해도를 높일 것이라고 본다. 또한, 중기부,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가 상당 액수를 코인 거래소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어떤 국회의원실이 확인했다고도 한다. 투기에 의한 사회적 손실을 방지하려는 규제가 일종의 채찍이라면, 이러한 협회의 출범이나 대형 기관들의 투자는 당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 사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그 무엇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일단 다행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에서 몇 사람들이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 어떤 사람들은 글은 원고지에 써야지 어찌 컴퓨터로 써서 인쇄하느냐고 했다. 1990년대 중반에 가정용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보통 사람들이 이메일을 쓰기 시작할 무렵, 인터넷 초보자들은 외국에 이메일을 보내고 국제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에 인터넷 상의 데이터 전송을 통한 음성 통화 서비스가 거의 무료로 가능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결국 유료화될 것이라 생각하고 배척했지만, 이제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무료 음성 통화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다. 2000년대 말 스마트 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은 누가 그런 걸 쓰겠느냐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모든 첨단 기술이 실용화되지는 않는다. 제도적인 이유에 의해서 또는 비슷한 기술에 밀려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블록체인 등의 새로운 기술이 코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이러한 신기술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할 때이다.

이기홍 교수 / 한림대학교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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