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 기고 ] 총회농어촌선교부 귀농귀촌상담소 세미나를 다녀와서

박용두 목사
2018년 01월 31일(수) 10:32

2011년 2월은 무척이나 추웠다. 첫 임지이자 첫 부임한 교회는 무척 열악했다. 성전 안의 벽에는 서리가 있었고, 온풍기는 있었지만 기름이 없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성도는 단 두 분의 여성(70세, 73세)뿐 이었다.

재정은 말할 것도 없이 열악했다. 첫 예배를 드렸다. "올 해가 가기 전 교회를 수리하겠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말한대로 그 해에 내부를 수리했고 열악하지만 개척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다짐하면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의지해 기도하고 전도해서 현재는 주일예배 10명(남3, 여7)의 성도가 함께 예배하고 있다.

우선은 밭을 임대하고 농사를 시작했다. 첫번째 이유는 교회재정과 생활비, 두번째는 마을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농사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때로는 지치고 실패를 경험하면서 6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농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날마다 힘들었다. '기도해야 하는데 전도해야 하는데 교회부흥을 시켜야 하는데 농사꾼이 되어서 되는가?'라는 자문을 수없이 반복했다. 마음먹은 대로 전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 마을사람들이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원근각처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보내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채워주세요. 그래서 우리교회도 당회가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자립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지난 해 설 명절 때였다. 처조카 사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필자를 찾아와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인즉 귀농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필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회를 주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임대한 밭을 보여주고, 귀촌을 한다면 이것을 줄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지난 추석 때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예천에 사과농사를 지으러 간다고 하면서 그 곳에 사과밭을 사려고 한다고 했다. 지인들에게 사과 농사를 지으면 돈을 많이 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필자는 그때 필사적으로 예천으로 가는 것을 막고 우리마을로 올 것을 권했다. 그리고 필자가 준비한 하우스, 농기계 등등을 모두 사용하라고 말하며 마을 이장과 주민들에게도 소개했다. 비어있는 집도 임대로 구해주었다. 마을에도 주민이 4명, 교회도 성도가 4명이나 늘어나게 된 것이다. "마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말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귀농귀촌상담소는 필자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정의 귀농으로, 귀농귀촌상담소가 마을에도 교회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총회 농어촌선교부에서 주최한 귀농귀촌상담소 운영세미나에 참석하게 됐고, 이를 통해 여러가지 유익한 사례발표와 토론, 그리고 '마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그 한 말씀이 필자로 하여금 귀농귀촌상담소운영할 수 있게끔 용기를 주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재능을 준비시키신 것 같다. 농업기술, 농기계사용, 수리기술, 농업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교육까지도 받게 하셨다. 전문 상담자로서는 아직 초보지만 필자의 장점들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 시들어가는 농촌을 살리고 싶다.

'문을 닫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교회를 살리고 꿈만 같았던 당회를 조직하고, 자립교회가 되어 도움을 받는 교회가 아닌 도움을 주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용두 목사
경안노회 상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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