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4색> "이런 은혜는 평생 받지 마세요"

[ 4인4색칼럼 ] <4인4색> 박종호 장로(1)

박종호
2018년 01월 23일(화) 14:17

2016년 2월 간암이 발견되고, 극심한 간경화로 인해 수술마저도 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받은 지 벌써 23개월이 지나고 있다. 간 이식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사의 말에 "사방이 에워싸임을 당해도 하늘은 열려있지 않은가"라는 평소의 소신마저도 무너져 내렸다. 나는 하늘의 문마저 닫힌, 빛 한 조각 없는 캄캄한 돌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자 나의 뼈, 살, 피 모든 것이 얼음보다 차갑게 눌려져 왔다.


대학 4학년 졸업과 동시에 스물셋의 나이에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헌신을 시작했던 시기, 그리고 가난하게 시작된 결혼생활, 나이 27살에 낳은 세 아이들, 찬양사역에 정신없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1988년 전세 날짜를 못 맞춰서 창고에 두달간 이삿짐 보관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 둘에 집사람까지 모두 여섯 명이 갈 곳이 없을 때 예수전도단 선배의 도움으로 두달 간 용인의 콘도에 묵으면서 좁은 방에서 씨름하며 광화문까지 출퇴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열악한 환경으로 셋째를 가질 생각이 없었으나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 되어 막내 딸이 태어나게 됐다. 그러나 27년이 지나고 난 후 이 아이가 우연히 태어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전율을 느끼고 있다.

시골 버스마저도 없는 한적한 콘도에서 아내는 두달 간 여섯 명의 손 빨래와 살림을 해야 했다. 심한 고생과 정신적인 불안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임신 초기 막내 딸아이를 지켜주셨다. 나와 쌍둥이 같다고 늘 우스개처럼 얘기하던 막내딸이 아니였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을 수 없다.

그 막내딸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못난 아빠를 위해 27년이 지나 자기의 간을 잘라 주게 될 줄 누군들 알았을까?

지난달 크리스마스에 2천년 전 가장 더럽고 냄새 나는 곳에 오신 예수님을 묵상했다. 가난하고 좋은 교육을 못받으시고 노동하시며, 그리고 33년 후에 건장한 젊은이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가 처절한 십자가에 달리셔야했던 예수님을 묵상했다. 그 죽음과 부활로 우리 모두에게 부활을 약속하신 은혜도 깊이 묵상했다. 

수술실 앞에서 '저 문이 열리면 죽을수도 있다'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던 순간, '내 간을 자르지 않으면 아빠는 죽는다'는 생각 속에서 뚱뚱한 아빠 때문에 너무도 크게 간을 잘라 진통제를 하루 종일 투여해도 고통으로 미칠 듯 몸부림쳤던 딸이 오버랩 되었다.

우리 딸은 태어난 지 27년만에 아빠를 대신해 죽음보다 더 무서운 터널을 지켜주었다. 나는 막내의 목숨을 대신 내어준 사랑을 받은 못된 아비가 되었다.

요즘 많은 분들이 내게 많은 응원과 함께 받은 은혜를 간증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은 "이런 은혜는 평생 받지 마세요. 평범하게 소박하게 예수님 사랑하세요"라고 밖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

어느 것도 희망이 없던 내게 맴 돌던 찬양은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였다. 나는 당시 아무것 도 할 수 없어 그저 베풀어주실 은혜의 바다에 누워만 있었던 것이다. 가장 절망하고 죽음마저 받아들여야하는 때가 살다보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당부의 말씀 나누고 싶다.

"하나님은 때로는 만져지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우리를 향한 붙드신 은혜의 그 손이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박종호 장로
CCM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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