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와 신앙고백 '그 길'

[ 논설위원 칼럼 ]

오시영 장로
2018년 01월 02일(화) 14:26

두 달 전 소형차를 구입했다. 차 뒤 유리창에 '그 길'이라는 시를 써서 붙이고 다닌다.

"바다야, 파도야/ 나는 섬이다/ 폭풍우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을/ 나는, 홀로 섬이다"라는 아주 짧은 시이다. 필자는 경차를 몰면서 아주 겸손한 운전자가 되었음을 스스로 느낀다. 도로에서 가장 작은 차이다 보니 부딪치면 큰 피해를 보겠다는 염려스러움이 함부로 거칠게 운전하지 말라는 자각으로 나타나면서 스스로 조심하며 겸손해져야겠다고 다짐한 결과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와 같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며 어린 아이의 성품을 닮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어른들이 횡행하는 악한 세상에 오셔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하늘의 진리를 설파하시고 싶으셨는지 모른다.

필자는 경차를 운행하면서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앎과 동시에 주차 등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 여태까지 큰 것이 좋다면서 큰 차를 운전하면서 과속하고 자만했던 삶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세상 체면 때문에 큰 차를 타야 했고, 과다한 비용 지출을 과시의 삶의 한 축으로 당연히 여겼던 삶을 반성하며 왜 이리 늦게 깨달았지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시를 차창에 붙이고 다니는 운전자는 대한민국에 아마 필자가 최초가 아닐까 싶다. 아는 이들이 재미있다며 웃기도 하고,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차가 신호 대기에 걸려 있을 때면 내 차 뒤에 멈춰 선 운전자는 내 시를 읽으며 생각에 잠길 것이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나 '초보운전' 등의 글귀만 보다가 필자의 '그 길'을 읽으며 "무슨 뜻일까?"하며 생각에 잠기거나 재미있네 라고 빙긋 웃을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차를 구입한 후 '그 길'을 써 붙일까 아니면 '사명'을 써 붙일까 고심하다가 '그 길'을 써 붙이기로 결정했다. '사명'은 "비에 젖었다고/ 애처롭다 하지 마라/ 나는 풀잎/ 아니 꽃이다"라는 단시로 '그 길'보다 더 짧다. 인간은 누구나 비에 젖으면 초라해진다. 하지만 풀잎은, 아니 꽃이면 비에 젖음이 오히려 생명이 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필자의 시 '그 길'이나 '사명'은 모두 신앙시이다. 신앙심이 없는 이라면 의지적 시라거나 시인의 독백 정도로 느낄지 모르겠지만, 두 시는 모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

전자의 '나는 섬이다'라는 고백은 이 세상 어떠한 풍파나 유혹이 몰아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고백한 것이고, 후자의 '아니 꽃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꽃으로 부름 받은 신앙인이라면 비-세상유혹에 젖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꽃으로서의 향기를 발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갈수록 팽배해진 물신주의에 조롱당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면서도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본질로부터는 여전히 벗어나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송구영신이 되었으면 한다. 2018년 무술년은 '누렁이' 해이다.

노란 개, 무술년은 개의 특성인 주인에 대한 충직함과 도둑에 대한 지킴이의 사명감으로 믿는 이들이 먼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청지기 삶을 상징으로 알려준다. 내 경차의 다른 차창에 귀한 성경 구절을 하나 써 붙이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 성경 구절을 써 붙일까 기도 중이다.

경차를 운전하면서 신앙의 고백을 써 붙이고 다니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는다. 운전을 겸손히 하게 되고, 세상을 자중하며 바라보게 되고, 분수를 깨닫게 되면서 감사함을 배운다. 

 

오시영 장로
상도중앙교회
숭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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