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비종교인, 교회에 무엇을 바랄까?- '도덕ㆍ윤리적 모범

[ <연중기획>비종교인, 그 절반에 대한 관심 ] 윤리성 부족이 '위기의 일상화' 초래

김승호 교수
2017년 12월 27일(수) 09:36

김승호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현재 한국교회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한 마디는 '위기의 일상화'다. 더 이상 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교회는 빠르게 영적 힘을 상실했다. 화려한 예배당 건축과 학위논문 표절, 성폭력과 공격적 선교에 이어 목회세습과 종교인 과세 반대 등 비종교인에게 비춰지는 한국교회는 부정적인 모습 일색이다. '현 세대'가 내리막길로 치닫는 가운데 '다음세대를 세우자!'는 교회의 구호는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암울한 시대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었던 조만식, 주기철, 손양원 같은 교계 지도자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을 십자가에 던지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과는 달리 이 시대 교계의 스타들은 탐욕과 이기심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다. 본받을 모델 지도자가 사라진 이 시대에, 교회 지도자들은 너도나도 세속 리더들을 흉내 내면서 어설픈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다. 종교적 권위, 영적 권위를 상실한 이 시대 한국교회의 슬픈 초상이 아닐 수 없다.

비종교인들은 더 이상 교회를 세상에 빛을 비춰주는 종교로 여기지 않는다. 이것은 급변하는 사회적 맥락과 요구에는 무심한 채 교회가 과거의 전통만을 반복해 온 안일함의 결과다. 내적으로는 목회자 공급 과잉과 교회들 사이의 양극화, 정치적 목적 달성에만 목을 매는 교계의 모습 등 심각한 문제들이 뒤얽혀 있다. 외적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 여부를 묻지 않는 교세 확장정책의 부작용이 교회 안팎에 내재하고 있다.

모든 종교는 사회통합에 기여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새천년에 들어선 이후에도 한국교회가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짙다는 점이다. 비종교인의 특정종교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해당종교의 윤리성 여부에 근거한다. 그만큼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윤리성 여부, 영적기관으로서의 교회의 윤리성 여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인 문제가 터질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는 거의 그리스도인들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요직에 포진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신앙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사회구조적 변혁의 책무성에 취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고지론'을 가슴에 품었다. 하지만 고지를 점령한 신자가 어떻게 어두운 문화를 변혁하고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실천적 행동은 부족했다. 변혁을 위한 비전과 능력은 없으면서 자리 쟁취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그리스도인 신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음을 탄핵정국을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알몸이 노출된 사람처럼 대중 앞에 수치를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성스러운 신비가 점점 벗겨지고 있다. 세상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인식이 세상보다 더한 교회의 모습에 놀라고 있다. 이 시대 복음전도의 가장 큰 장애물은 교회의 안티 세력이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일지 모른다. 안으로는 영광스런 말씀의 신비를 드러내 주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밖으로는 그러한 신비를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제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신비적 요소를 회복해야 한다. 종교적 신비는 은사주의나 계급주의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독특한 형식이나 수적 힘으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영원의 이상을 현재의 삶에서 살아냄으로 회복된다. 그것은 이웃교회와의 비교의식에서 벗어나 천국을 연습하고 경험하는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그런 천국의 가치를 이웃에게 실천함으로 사랑이 넘치는 마을공동체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교회됨 회복과 교회의 적극적 사회참여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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