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비종교인, 교회에 무엇을 바랄까?- '대사회 문제 참여'

[ <연중기획>비종교인, 그 절반에 대한 관심 ] "사회 참여, 결국 사람 변화시키는 일"

손은정 목사
2017년 12월 27일(수) 09:32

손은정 목사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지난 10월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가 목사안수를 받았다. 며칠 후 후배를 격려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노동자 정서지원 강사가 덕담을 했다. "목회자는 성속의 경계에 있는 존재 아닌가? 어느 쪽에 기울어지지 말고 그 사이를 잘 교통하는 역할을 해라." 필자는 이 짧은 권면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목회자의 위치가 성속의 경계에 있듯, 교회는 영적인 기관이면서 동시에 세상 속에 있다. 목회자는 거룩성을 지키면서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하나님의 질서로 변화시켜 나가야할 거룩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교회의 대사회 문제 참여는 영생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영생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누가복음 10장) 길가에 쓰러진 이웃을 일으켜 세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곧이어 나온다. 사회적으로 곤경에 처한 자를 돕는 일은 흔히 오해하듯 사회복지나 사회운동의 영역이 아니라 영생의 일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 불거지고 있던 때 대한예수교장로회 사회봉사부에서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때 참석한 분들 중에 한 청년과 지역의 목회자 한 분이 "현재 한국교회가 예언자적 역할을 너무 못하고 있고, 이것이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추락시키며 교인들의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의 대사회 참여는 영생과 직결되는 과제이면서 동시에 현재 한국교회가 돌파해 나가야 할 위기의 해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교회가 대사회문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사회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입장을 발표하고 고난 받는 현장에 찾아가서 함께 예배드리고 위로를 하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들어가서 교회의 대사회 참여가 단지 뒤에서 지원하거나 옆에서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 변화를 추동하고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산업선교회에서 일하는 동안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지금 필자는 총 10페이지에 이르는 한 편의 긴 서사시를 짧게 소개하려 한다. 제목은 '바보들의 행진'으로, 우리나라 산업선교의 개척자였던 조지송 목사가 쓴 것이다. 이 서사시에는 우리가 교회에서 부르고 찾게 되는 주님, 감사, 소망, 사랑, 믿음, 이런 단어들을 보기 어렵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말씀으로 하셨으니 우리도 말로 시작했다'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주님이란 단어도 당시 1970년대 노동자들이 부른 노래 중에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라는 가사에 한번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이 서사를 읽다보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공순이'라는 처절한 자기비하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근로자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고, 하나님 자녀라는 주입과 표현이 없는데도 어느새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느껴진다. 불의에 항거하는 싸움이 시작되고 난 후 희생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단결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1970년대 대표적인 노동사회 문제였던 살인적인 장시간 저임금 문제와 체불 임금을 비롯한 열악한 작업환경 문제를 개선했지만, 이것에 그치지 않고 천대받던 노동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엄을 깨닫고 참 자유인으로, 평화의 일꾼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 시를 읽고 나면 당시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개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분석가나 사회행동가가 이끈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구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 참여가 이런 것이겠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당시 리더들의 헌신이 이 시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그들의 리더십이 참 그립고 아쉬운 시절이다.  

교회의 대사회참여 문제는 해당시기 사회시스템을 바꿀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의 변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홀로 족이 증가하고 무종교인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신이 된 인간이라는 호모데우스의 출현과 데이터교라는 신흥종교가 예고되고 있다. 인간이 개발한 첨단기계기술에 인간이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때 1970년대 산업선교의 대사회 문제 참여의 방식과 결과는 '오래된 미래의 자산'으로 되새겨봄직 하지 않은가? 사회 변화가 동반하는 부정적인 요소는 시스템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사람의 영적인 변화는 사회 참여 현장과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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