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문화의 세계화

[ 4인4색칼럼 ]

유진규 장로
2017년 12월 27일(수) 08:28

유진규 장로
㈜티코리아그룹 대표이사

차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워주었으며, 문화와 산업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해 왔다. 차로 인해 아편전쟁(1840~1842)이 일어났으며, 차를 운반하기 위한 쾌속 범선인 티 클리퍼(tea clipper)와 새로운 무역로가 생겨났다. 각 나라마다 차로 인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면서 차와 관련된 산업도 활발하게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차(茶)문화는 시대적으로 지식인이나 문화인, 그리고 진취적인 사고를 지닌 리더들의 음료로 각광을 받아 왔으나, 여러 시대를 지내오면서 세계적으로 일반 대중과 함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차(茶)문화는 당나라 시기에 이르러 음다(飮茶) 풍습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고, 유럽의 차 문화는 17세기 초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중국의 차를 네델란드에 전하면서 시작됐다.

영국의 경우는 찰스 2세의 부인 캐서린 공주가 왕실과 귀족들 특성인 화려한 티파티를 열면서 차는 왕실 음료가 됐고, 티파티는 왕실과 귀족들의 호화로운 사교모임이 되고 상류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미국인들은 네델란드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차를 알게 됐으며, 영국을 통해 홍차를 마시게 됐다. 그 후 미국이 대량으로 차를 수입하자 1773년 12월을 기해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프레데릭 노스(Frederick North)는 '차 칙령'을 발표했고, 저렴한 차 구입 루트를 빼앗긴 미국의 차 상인들과 독립군들은 '보스턴 차사건(Boston Tea Party)'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센고쿠 시대에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다도 자문 역할을 하는 차(茶)스승 센리큐(千利休 1522~1591)를 통해 화경청적(和敬淸寂)의 다도정신을 배우게 됐고, 지도계층인 무사들이 차를 마셨으나 오늘에 와서 일본의 차 문화는 전 국민의 다도문화로 정착돼 전국의 차 모임이 2천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의 다도 정신은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 632년∼647)과 흥덕왕(재위 826∼836) 시기에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의 화개동에 심어 자람으로 궁중에서 차를 마신 기록이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왕실과 조정의 의례(儀禮)에서 차(茶)가 사용됐고, 조선 예법의 기준이 되는 제사(祭祠), 혼례(婚禮), 제례(祭禮) 등에 차(茶)를 올리는 헌다(獻茶)의 법도가 있어 양반 관료 사회에 음다(飮茶) 풍속이 성행했다. 조선 말기에 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 1762~1836),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초의대선사(草衣大禪師1786~1866)가 쇠퇴한 차문화(茶文化)를 다시 일으키고 차(茶)를 연구하면서 차문화를 발전시켰다.

왜정 36년간 나라의 모든 문화와 언어를 말살 당했지만 (사)한국차인연합회(창립:1979년), (사)한국다도협회(창립:1981년), (사)한국차문화협회(창립:1991년), (재)명원문화재단(창립1995년) 등 차와 관련된 많은 협회가 생겨났고, 특히 최근에는 성균관대, 덕성여대, 한서대 등 여러 대학에 다도학과가 신설되면서 고유의 다예와 차(茶)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차 인구가 약 5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茶)를 누구나 즐겨 마시는 음료를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당대의 사회적, 정신적 문화를 선도해 가는 국민 음료로서 점차 발전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대한민국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불교와 유교가 지배적이었고 이들이 사회 지도계층에 있으면서 차를 애호하니 마치 차를 마시는 문화가 타종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이제 기독교인들도 차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생각하고 일상에서 차를 즐겨 마시면서 또 다른 차 문화를 정착시켜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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