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믿음 선교의 힘

[ 땅끝에서온편지 ] <4> 선교사를 향한 사랑 ①

정균오 목사
2017년 12월 26일(화) 15:11

"정 목사 잘 지내는가?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별일은 없고? 네 별 일 없습니다. 그럼 됐네."

선교초기 필자를 선교사로 러시아에 보내신 故 김동익 목사님은 1달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서 단 세 마디를 물으셨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국제전화 사용료가 매우 비싼 때였다. 담임 목사님은 매우 바쁜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매달 한번 국제전화를 걸어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셨다. 목사님은 모스크바에서 언어연수를 하는 동안에도 홀로 선교지에서 맨땅에 헤딩하지 않도록 이미 선교지에 정착한 한 선교사님의 보호 아래 있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 주셨다.

모스크바에서 언어연수를 마치고 선교지인 블라디보스톡에 들어갈 때 목사님은 사모님과 해외선교부장과 재정부장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한국식당 하나를 전세 내셔서 모든 선교사와 선교사 가정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며 "우리 정 목사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삿짐을 보내고 한 달이 넘도록 컨테이너를 찾지 못할 때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물으셨다. 생활비도 다 떨어지고 아이의 분유도 다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하는 교인에게 돈을 꾸어서 컨테이너를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말씀을 드린 바로 다음 주에 선교부장을 보내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후원교회 담임목사님의 사랑과 관심은 필자가 선교지에 정착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선교를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평생 동안 그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암으로 돌아가신지 20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분이 그립다.

필자를 파송하신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새로운 담임목사님으로 이수영 목사님이 오셨다. 목사님은 위임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지를 둘러보셨다. 당시 필자는 교파를 초월하여 14명의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블라디보스톡 장로회신학교를 세워가고 있었다. 목사님은 장신대 교수를 하다가 오신 분이기 때문에 작고 체계도 별로 잘 갖추어지지 않은 선교지에 있는 신학교가 목사님의 눈에 차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며칠간 아무 말씀도 없이 선교지 상황을 살피신 후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정 목사 나는 선교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지원할 테니 열심히 해" 한마디 하시고 돌아가신 후 16년 동안 새문안교회 목회를 하시면서 선교에 관해선 항상 선교사 입장에서 생각하시며 선교사를 믿어주시고 은퇴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주셨다. 이런 후원교회 목사를 존경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블라디보스톡 장로회신학교 학사를 짓고 있을 때 IMF가 터졌다. 후원교회는 어려운 중에도 건축비 전액을 보내주어 차질 없이 신학교 학사를 지을 수 있었다. 당시 해외선교부장이셨던 장로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해외에 나가있는 선교사에게는 하나님 다음에 돈이지요." 물론 그 말을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선교사를 잘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장로님의 사랑이 담긴 철학이셨다. 선교사가 이런 장로님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신학교 학사를 다 짓고 다음해에 새로운 해외선교부장 장로님이 블라디보스톡에 오셨다. 건축에 소요된 건축비 사용내역을 보고했다. 장로님은 보고서를 보시지도 않으시고 말씀하셨다. "목사님 이미 교회에서 건축비 정산은 끝났습니다. 보고하실 필요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나중을 위해서 보관만 하고 계시죠." 그만큼 장로님은 선교사를 믿는다는 것이었다. 감사했다. 그리고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장로님은 돌아가셨지만 내 가슴속에 깊이 남아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역할 때 동료선교사 아버님이 선교지에 오셨다. 아버님은 제법 큰 교회 시무장로셨다. 장로님이 아들선교사 집에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신 후 돌아가실 때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공항에서 출국하시기 전에 아들 선교사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눈물을 훔치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을 선교사로 보내고 나서 제대로 발을 뻗고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특히 손자 손녀가 이렇게 추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 선교에 부르심을 받고 어머님이 못 미더워 선교를 망설이고 있을 때 '하나님이 부르셨으면 선교지에 가야지 무엇을 망설이냐'고 하시며 나의 등을 떠 미셨던 필자의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 마음에 숨겨 놓으신 것을 말씀 하셨다. "아들, 나는 매일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러시아 쪽을 바라봐!!!" 어머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과 손자 소녀가 그리워 매일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을 다리한번 펴지 못하고 움츠려 주무시다 새벽기도회에 가서 선교사인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셨다. 선교사를 자기자녀나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선교사를 위해서 잠 못 이루는 사랑의 마음과 절실한 기도가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후원교회 담임목사와 선교담당자들이 선교사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때 선교사는 보람을 느끼게 되고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참고 견기며 이기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 또한 선교사로 하여금 후원교회를 사랑하고 후원교회 담임목사를 존경하게 만든다. 선교사로 하여금 더 충성하게 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것은 선교사역에 대한 감독과 평가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이다. 선교사에 대한 세심한 돌봄과 사랑이 선교사를 감동시키고 선교에 더 헌신하게 만든다.

선교사 대부분은 하나님 나라확장을 위해서 십자가 희생을 각오하고 목숨을 걸고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선교사들은 결코 쉽지 않은 선교지에 적응하면서 마음과 몸이 병든다. 선교사가 병이 들면 병든 선교를 할 수 밖에 없다. 선교사의 정신건강과 선교사역의 성패를 가늠하는 것은 신뢰와 사랑과 기도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한국교회에는 선교사를 내 자식, 내 손자라고 생각하는 후원교회 장로님 권사님과 성도님들이 있기에 오늘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위로를 받고 선교사역에 매진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사역을 하게하고 있음을 수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과 기도 때문이었다.

오늘은 문화센터 건축을 돕고 자원해서 터키선교사로 가서 사역하고 있는 세르게이 집사와 선교사학교를 졸업하고 오지에 들어가 있는 러시아교회 선교사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세르게이 잘 지내? 별일 없어? 그럼 오케이, 잘 지내, 기도할게.’ 

정균오 목사/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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