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보다 귀한 생명으로 산 한 해!

[ 논설위원 칼럼 ]

공성철 교수
2017년 12월 26일(화) 10:09

2017년이 작별을 고하고 있다. 놓쳐버린 것들이 아름답듯이 한 해를 보내려니 지나온 시간들이 새삼스럽게 귀하다. 그래서인지 송년회, 망년회라는 말이 난무하는 연말은 '억지로라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절이라'고 정의 내려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한 해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모두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까? 시간 지난 지금 생각해도 기쁨이 피어오르고 그래서 조용하게 미소 짓도록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말할까? 반대로 수치스럽고, 분하기까지 한 일들은 어떤 것들이라고 할까?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정황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라고 할까?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목표를 향해서 달렸으니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삶을 평하며 제시하는 사건들은 참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그 사건들의 성격과 정신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실패보다는 성공, 뒤 떨어지기보다 앞서고,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이루었을 때를 가장 기뻤던 일로 들지 않을까?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내는 산물의 총체를 문화라고 한다. 작게는 가정과 가문에서 크게는 국가가 될 것이다.

한 국가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은 국가의 문화를 형성하고 다시 자신들이 그 문화에 지배를 받으면서 그렇게 만들어진다. 문화 속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정신은 그가 차지한 어떤 지위, 속한 어떤 공동체에서도 보고 자란 것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경쟁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지 않으면 진다는 논리로 쌓아올려진 문화는 그러한 정신들을 만들어낸다. 이기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의 혜택(?)만 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은 일뿐이고, 삶도 동료 인간도 모두 성공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속한 곳이 어디이든지 그렇게 살게 되어 있다.

어떤 기구나 공동체든지 간에 그런 정신이 끌고 가는 곳은 그런 모습이 되고 만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본다는 교회에도 누구보다 앞서려는 논리, 세상과 똑같은 경쟁의 논리가 있을 수 있다. 구령사업을 말하는 선교도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직책과 기관이 있더라도 거기에 흐르는 문화는 기관의 종류가 아니라 그것을 끌고 가는 정신과 영혼에서 찾아야 한다. 멀리 보고 크게 보면 이것은 한 해, 한 사람의 일이 아니고 국가의 일이고 인류의 일, 곧 문화요 역사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과 기운을 써서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 36) 이 말씀에 이의를 달면 안 된다. 그렇다면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인데, 이 땅에 그것 팔아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살아 있다는 것은 잊지 않고 살았어야 한다.

살아 온 만큼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면 잘 산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아름답고, 동료인생이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여겨진다면 생명을 밑지게 팔지 않은 것이다. 대중가요를 불러도 거기에 담겨 있는 정신을 보고 노벨평화상을 주고 또 받는 고상한 유희는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함께 한다는 것이 기뻐서 경쟁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면서 이긴 자나 진 자가 모두 환호를 하는 문화도 있다. 그러한 곳에서 자란 영혼들은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그곳을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무한경쟁의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에서도 휴먼 드라마가 펼쳐지도록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의 원인과 현상을 '활용할 것은 누리고, 누리고 즐길 것은 수단으로 사용하는 혼동'이라 정의하고 있다. 혹시 가지게 되는 경우가 되면 그저 잘 활용하면 될 것은 숭배하고, 누리고 향유할 것을 수단으로 삼는 미련한 길 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생명의 문화를 탄생시킨다. 이런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그런 사람을 키우는 문화로 거듭나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2018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공성철 교수
대전신대 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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