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슬픔을 아는가?

[ 목양칼럼 ]

김수훈 목사
2017년 12월 13일(수) 10:07

3년 전 햇볕이 그렇게 고왔던 날,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종려주일 예배가 끝난 후 교회의 기도의 어머니로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김 권사님이 천국으로 입성하셨다. 은퇴하신지 오래셨지만 교회에 부임한 저를 위해 날마다 사랑의 기도로 힘을 주셨던 참 좋으신 분이셨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돌아가신 고인을 서울 추모 공원에서 고별예배를 드렸다. 늘 기도의 자리에 묵묵히 앉으셨던 고인을 육신의 모습으로 더 이상 뵐 수 없는 시간이기에 가슴은 아팠고, 슬픔은 깊었다. 그 슬픈 이별의 예배의 자리에 작은 아이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 겨우 6살, 고인의 증손자였다. 이별이 뭔지도 모르고,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를 6살의 그 아이는 내가 예배를 인도하는 내내 그곳에 앉아 말없이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함께 있던 성도가 눈물을 닦아 주며 물었다. "얘야, 그렇게 슬프니?" 그 물음에 아이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코끝을 발갛게 물들인 채 맑은 샘물 흘리듯 울고 있었다. 지금도 그 아이의 모습이 선하다. 6살의 슬픔은 무엇일까? 차라리 묻고 싶다. "그대, 슬픔을 아는가?" 아마도 고인은 6살의 증손자의 그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며 따뜻한 마음으로 천국으로 가셨을 것이다. 그래서 참 아름다웠다.

김 권사님이 돌아가신 후 지난 주일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많은 기도의 어머니 권사님들이 천국으로 가셨다. 교회의 기도의 한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음세대의 기도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마음이 많이 슬프다. 눈물이 흐른다.

슬픔의 눈물이 없다면 어땠을까? 눈물 없는 슬픔은 고통이다. 가슴이 마른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물을 주셨다. 눈물은 우리의 슬픔을 닦아준다.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다윗은 블레셋에게 포로로 잡힌 후 이런 고백을 했다. "주는 나의 슬픔을 아십니다. 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슬픔이 있음을 잘 아신다. 그래서 그 슬픔을 눈물에 담고, 슬픔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님의 마음의 병에 고스란히 담으신다.

슬픔의 눈물을 내 가슴에 담으면 병이 된다. 더 큰 슬픔이 된다. 하지만 주님의 병에 담긴 슬픔의 눈물들은 우리에게 은혜로 돌아온다. 감사로 돌아온다. 회복으로 돌아온다. 금요 기도회를 하며 그 슬픔을 담은 눈물을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병에 담았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받으시고 위로하셨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며 마음에 새로운 결단이 솟아났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항아리에 담긴 김 권사님을 추모공원에 모시며 드리는 마지막 예배 시간, 6살의 그 작은 고사리 손이 증조할머니를 살짝 어루만지더니 웃으며 저만치 뛰어 간다. 그 작은 아이의 슬픔의 눈물을 닦으신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슬픔도 받으실 줄 믿는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슬픔을 잘 아시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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