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자리매김

[ 개혁 ]

권오규 목사
2017년 11월 27일(월) 12:2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교만과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 거스리는 것이 여러 가지일텐데 유독 교만과 우상숭배를 추리는 이유가 있다. 교만과 우상숭배는 모두 자리의 문제다. 하나님 자리의 문제다.

바른 믿음이라 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가 뒤바뀔 때 사람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흔들리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잊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교만이란 그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람의 자리로 내린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을 내더라도 자신의 기준에 의해 하나님의 기준은 거절되거나 무시되기 십상이다.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해도 그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일시적인 선택에 불과하다. 이것이 교만이다.

우상숭배 역시 자리의 문제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의 자리를 사람이 차지하지는 않지만 하나님도 계시게 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하나님도 아닌, 제3의 어떤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사람이 올려놓은 제3의 것이 우상이고,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소유하고 목적한다.

결국 하나님은 또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기신다. 그렇게 되면 개인에게 하나님의 기준은 단지 사람의 우상을 소유하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람이 우상시하는 돈, 명예, 권세, 사상이 우선시되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가치는 도구와 방편이 될뿐이다. 이처럼 교만과 우상숭배는 모두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거부하고, 사람과 사람의 욕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혹시 오늘 우리의 혼란이 이것 때문은 아닐까? 이런 자리의 문제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가 앉아있고, 하나님이 계실 자리에 내가 원하는 다른 것들을 올려놓으면서 그것이 마치 바른 것인양 오해하고, 주장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개혁은 거창한 싸움을 하는 것이기보다는 바른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계시도록, 사람은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개혁은 변화와 성숙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 변화와 성숙은 오랜 시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이 바른 자리매김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되시게 하는가? 교회는 하나님을 하나님되시도록 주권을 인정해드리는가? 세상속의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성도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내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 있도록 해야 하는 숙제가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 아닐까.

권오규 목사 / 계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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