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練習)

[ 4인4색칼럼 ]

이대성
2017년 11월 21일(화) 14:38

이대성 수필가
벨로체피아노 대표
진천중앙교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있다.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돋우어 보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발화 속도나 억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구절에서 끊어서 말하고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답답할 뿐이다. 

며칠 전 어느 교수로부터 시 한 편을 메일로 받았다. 10월의 마지막 날에 '도민과 함께하는 가을 시 낭송회'를 개최하는데 시 낭송을 해달란다.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선뜻 해보겠다고 답한 것이 몸을 묶은 올가미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전문 낭송가가 아닌 일반인이 하는 것이 더 신선하고 듣기 좋다며 감정을 살려 마음대로 해 보라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지시로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어본 이후로,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얼마 만인가.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기를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읽어봤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 핀잔만 듣는다. 그럼 당신이 해보라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내에게 읽게 하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연습을 반복한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아내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며 감정이 살아난다.

이번에 낭송한 시는 김춘수 시인의 '강우(降雨)'라는 시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지 2년 여가 지난 후 쓴 작품으로, 아내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애절하게 노래한 시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풍경을 제시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아내를 찾는 모습은 듣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든다. 특히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쏟아지는 비에 비유하며, 결국은 아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절망하고 체념하는 슬픈 시이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 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연습을 반복하면서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항상 옆에 있기에 아내의 존재감과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아내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외식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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