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 수 없는 불꽃'

[ 4인4색칼럼 ]

구성조 장로
2017년 11월 14일(화) 15:22
   

구성조 장로
광고사진가협회 전문위원ㆍ선목교회

사진은 제암리 학살현장 사진을 찍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rank W. Scofield; 한국명 석호필)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화성시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광장에 세워진 동상이다.

박사는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지만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타고 제암리로 향했고, 모국도 아닌 타국 땅에서 목숨 바쳐 몰래 사진을 찍으며 학살현장을 기록해 비인도적 침략행위를 국외로 알렸기에, 민족대표 33인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34번째 대표라고 평가받는 분이다.

그는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했으며, 토론토대학에서 수학 중 과로로 병상에서 생활하게 됐지만 졸업 후 1916년 한국에 들어와 세브란스병원에서 세균학, 위생학 등을 강의했다. 1919년은 스코필드 박사가 서른이 되던 해였다. 3월 1일 오후 2시 서울에서 거사가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던 스코필드 박사는 자신이 할 일을 치밀하게 계획해 탑골공원 주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때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고 박사는 재빨리 함성이 들려오는 공원 정문을 향해 달려가 대열을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 후 4월 제암리 학살사건이 일어난 생생한 사건의 현장에서도 박사는 번개같이 카메라를 꺼내 양복으로 카메라를 가리며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 순간은 바로 스코필드 박사만이 찍을 수 있었다는 수원사건 현장의 역사적 사진이 되었다. 이 사진은 그의 노력을 통해 널리 국외에 소개됐으며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당시 그가 사용한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란 모델이었을 것이다. 필름을 감아 사용하는 2안 리플렉스 카메라(twin-lens reflex roll-film camera)로 셔터 소리를 최소화해 찍을 수 있는 카메라였다. 그는 5월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는 유관순 등을 심방하기도 했다. 그리고 1920년에 다시 '끌 수 없는 불꽃'이라는 책을 출간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 이름 석호필 선교사. 그는 1970년 부활절을 이틀 앞둔 4월 12일 영면했으며, 국립묘지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순간의 용기로 나라를 되찾는 위대한 기록을 남긴, 모국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에스겔서 36장 28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이 땅에서 살아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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