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기 총회 주제해설 (3)종교개혁의 관점에서

[ 특집 ] 교회의 거룩성 회복이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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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7일(수) 10:07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둘째,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 안에서 참된 교회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은 제102회 총회주제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와 본질적으로 연결이 된다.

교회의 거룩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성과 그 구원에 기인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믿음을 통해(though Faith) 하나님의 은혜로(by Grace)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하였다. 그 결과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종교개혁의 3대 원리를 세웠다. 마르틴 루터는 교회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칼뱅은 성도들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다고 했다. 교회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벧전 2:9)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이며, 성령의 전(고전 6:9)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연합을 통해 유지된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를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와 불가시적 교회(invisible church)로 구분하여 이해했다. 불가시적 교회는 종말에 완성되는 완전한 교회이다. 반면 세상에 있는 가시적 교회는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불완전한 교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시적 교회를 통해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을 이루신다. 가시적 교회 안에는 참 교회를 발견할 수 있는 표지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세례와 성만찬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집행되는 곳에 의심 없이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 말씀과 세례와 성만찬은 성령께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거룩한 연합을 이루시는 은총의 수단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죄에 대해 죽고 다시 부활하는 성례이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와 성도를 연합시켜 그리스도의 모든 영적이 교회의 것이 되게 하시는 성례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개교회주의에 빠지지 않고, 전체 교회의 몸을 보살피며, 복음을 수호하고, 선교하는 데서 나타난다. 성도들은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라고 고백한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라고 고백한다.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의 통일성, 보편성, 사도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성도의 거룩성은 성(聖)과 속(俗)을 나누는 이분법을 넘어 마을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에 근거하여 만인제사장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례 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거룩하다. 신분의 차이가 없고 임무의 차이만 있다. 칼뱅은 만인제사장직을 보강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을 돕기 위한 은혜의 수단으로 교직을 제정하셨다고 했다. 말씀, 세례, 성만찬의 목회를 수행할 목사, 성도들의 경건한 삶을 보살필 장로, 복음 진리를 가르쳐 이단을 막는 교사(신학자), 그리고 교회 안팎의 빈자와 약자를 돕기 위해 집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의 모든 직업은 소명이며 거룩한 직업으로 보았다. 이것은 거룩한 교회가 세상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종교개혁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의 관점에서 신앙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마을 속에 정의와 평화의 사회를 이룩하는 데 기여했다.

첫째,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과 선행의 관계를 바로 잡았다. 구원은 믿음으로 획득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샘솟는 감사로 인해 마을 안에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루터는 구걸행위를 금지시켰고 1522년에 최초의 사회복지법령을 초안하였다. 그후 개신교 국가들은 사회복지 정책을 제도화했다. 칼뱅은 봉사(디아코니아)를 위해 교회의 집사직분을 세웠고, 제네바 당국과 교회가 협력하여 자선단체를 세우고, 병원을 수립하여 제네바의 빈곤 문제를 해결했다. 칼뱅은 제네바 정부의 복지 활동을 기독교인들의 사역으로 인정했으나 교회의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적 활동이므로 국가의 활동과 구분하여 이해했다.

둘째, 종교개혁자들은 세속교육을 개혁했다. 교육이 없이는 종교개혁의 미래가 밝지 못했다. 그들은 당국을 설득하여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종교개혁 교리, 학문과목, 사회윤리를 가르쳤다. 루터파 영주들과 시 당국은 개혁자들의 주장에 응답했다. 특히 루터교 교리문답교육은 어린이 신앙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뱅은 교회 교육과 제네바 아카데미라는 두 차원에서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제네바 아카데미는 목사와 기독교 사회의 시민 지도자를 양성했다. 칼뱅의 신학과 인문주의 전통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셋째, 칼뱅은 사회 경제윤리에 큰 원칙을 세웠다. 부(富)는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이므로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돈은 영적인 것이며 신앙적인 것이다. 칼뱅은 5% 이자를 허용했지만 가난한 사람과 수익이 없는 사람에게 이자를 부과하지 못하게 했다. 상품의 교역은 마을구성원의 영적교제의 표지였다. 따라서 독점과 사재기 행위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 행위라고 보았다. 노동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그 삶을 박탈하는 것이며, 임금을 착취하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다.

넷째, 종교개혁자들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교회의 영적통치와 국가의 정치적 통치는 서로 협력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두 기관은 구분되는 영역이다. 칼뱅은 교회의 말씀, 성례, 영적양육의 자율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교회가 국가에 대해 네 가지 직무를 가진다고 했다. ① 교회는 법과 정부에 복종하고 통치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② 교회는 국가가 부자와 세력자로부터 빈자와 약자를 지켜주도록 격려해야 한다. ③ 국가가 참된 종교를 향상하고 교회의 치리에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 ④ 통치자들이 잘못을 범할 때 교회는 그들을 경고해야 한다.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마을 단위로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결과 일제의 박해와 폭압을 받았으나 백성들로부터 민족을 위하는 종교로 존중을 받았다. 종교개혁자들도 당시 영국, 스페인,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를 통치하는 로마 가톨릭 통치자들로부터 각 민족과 백성들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와 존엄성을 지지하는 일을 하였다. 1559년 프랑스 개혁교회가 비밀리에 설립되고 갈리칸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다. 네덜란드 개혁파들은 15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1560년에 로마가톨릭주의를 금지하고 장로회주의를 유일한 교회정치로 채택하였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은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정착하였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교회의 거룩성을 추구하면서 세상 속에 하나님 주권을 세우는 일을 하였다. 따라서 성도의 거룩성은 세상 속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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