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기 총회 주제해설 (2)마을목회의 성서적 배경

[ 특집 ] 교회, '하나님 나라 공동체'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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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7일(수) 10:05

지역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고 지역 공동체와 더불어 구원과 생명의 길을 열어가려는 마을 만들기 내지는 마을 살리기 차원의 마을목회가 한국교회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거룩한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이다.

금번 제102회 총회 주제인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과 과제를 천명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까닭에 오늘의 우리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고 지역 공동체를 세우는 마을목회야말로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로 하여금 심기일전하여 지역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섬김과 사랑의 실천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지역 주민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달리 말해서 교회가 마을과 지역사회를 향하여 열린 공동체가 되어 마을과 지역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됨으로써,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교회 갱신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성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마을목회의 과제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역사를 담고 있는 구약성서는 마을목회의 신학적 근거라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형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1:26~28에 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는 신분이나 계급 또는 나이에 의한 차별, 그리고 남녀의 성별이나 신체적, 정신적 장애의 유무에 따른 차별이 조금도 없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비추어 본다면, 어린아이와 성인, 남성과 여성, 부자와 가난한 자, 건강한 자와 병든 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죄인과 의인 등의 이분법적인 차별의 구조는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듯이 창조 질서 안에서 구체화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평등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다양한 율법 규정들이다. 오경 안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법령집, 곧 계약의 책(또는 계약 법전, 출 20:22~23:33)과 성결 법전(레 17~26장) 및 신명기 법전(신 12~26장)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법전들은 정의로운 공동체의 확립과 약자 보호를 기본 정신으로 가지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시켜 본다면, 이 법전들은 가나안 정착 이후의 농경 문화권에서 본격화된 도시화 현상과 왕정의 출현 및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ㆍ경제적인 불의나 불평등에 대단히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보아 사회ㆍ경제적인 강자들이나 부요한 자들 또는 넉넉한 자들이 그 반대편에 있는 사회ㆍ경제적인 약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정적인 금지 명령과 그들에게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하는 긍정적인 행위 규범의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법전들이 가난한 자들을 부요한 자들의 압제로부터 보호하는 한편으로, 기존의 계층 질서를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부의 재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정의로운 평등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기본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아울러 이 법전들은 전반적으로 사회ㆍ경제적인 약자 내지는 가난한 자들이 강하고 부요한 자들에 의해 압제 당하는 사회적인 불의의 현실을 용납하지 않는 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하나님 자신의 품성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강대 제국의 압제 하에 고통당하던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분이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의 사회ㆍ경제적인 약자들을 돌보시고 붙드시는 분이라는 설명(출 22:21; 23:9; 신 24:18; 참조. 신 10:18~19)이 그렇다.

이러한 동기 부여는 결국 정의에 기초한 건강한 공동체의 형성이 하나님의 구원 은총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응답임을 의미하며, 그것이 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인간적인 관심사 내지는 자선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비롯됨을 뜻한다. 

이를테면 일주일 단위로 사회적 약자인 모든 종들과 나그네들까지 쉬게 함으로써 주변의 약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도록 명하는 안식일 규정(출 20:10; 신 5:14)이나, 이와 동일한 차원에서 종들을 해방시키라고 명하는 7년 주기의 민족적인 축제 규정(안식년, 출 21:2~6), 그리고 50년 주기로 땅과 집과 신분의 회복이 이루어지게 하여 이스라엘 공동체가 항상 새롭게 출발하도록 명하는 안식년 규정(레 25장) 등이 그렇다. 한국교회의 마을목회 과제는 이처럼 중요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형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신약성서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에서 마을목회의 신학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초기의 한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 1~2절을 낭독하시면서, 자신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그리고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세상에 오셨음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눅 4:17~19). 

그가 공생애 기간 동안 내내 강조하신 것이 바로 이러한 모습을 가진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복음이었다. 그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곧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눅 7:22)이나, 최후의 심판에 관한 가르침에서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마 25:40)은 그의 하나님 나라 공동체 복음이 어떠한 성격을 갖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고 병든 자, 갇힌 자 등과 동일시하셨으며(마 25:31~46),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항상 세리들과 죄인들, 창기들, 차별당하는 여성들과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온갖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치료해주셨다. 

참으로 그에게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에 따른 차별 또는 남녀 성별에 의한 차별, 장애의 유무에 따른 차별 등이 전혀 없었다. 그의 이러한 사랑과 정의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성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구속 사역은 한 마디로 지역 공동체와 연약한 이웃을 섬기는 마을목회의 전형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초대교회에서 발견되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는 이처럼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이루신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모습을 이 세상에 재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당시의 성도들은 모든 물품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행 2:44~45). 

그들은 또한 모두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는 법이 없었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 까닭에 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사도들은 그것을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행 4:32~37). 이것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목회의 모델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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