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자여, 교회여 어찌할꼬?

[ 논설위원 칼럼 ]

임규일 목사
2017년 09월 26일(화) 14:08

우리 교단 총회는 총회 2세기를 새로 시작하는 새로운 원년으로서의 제101회 총회를 지나 제102회 총회 시대를 열었다. 과연 새로운 역사의 시대는 열려지고 펼쳐질까? 그런 기대와 간절함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1. 그렇게도 목청 높였던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 2017년'이 저물어 간다. 결국 지나가는 세월의 한 자락인 것이다. 있었던 일은 그것을 명목삼아 유럽 여행의 발걸음들만 숱하게 줄을 이었을 뿐이고, 이를 상품화한 여행사들만 메뚜기도 한 철 하듯이 지나가지 않았는가? 과연 한국교회,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변화되고 개혁되며 그런 진지한 도전에 마주하였을까?

2. 제102회 총회는 나름대로 시대의식을 가지고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주제를 천명하였다. 부제로는 의기양양하게도 '마을을 교회로, 주민을 교인으로'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 현실은 바다 속에 빠졌던 베드로처럼 이미 세상이라는 바다에 세상보다 더 풍덩 빠져버려 침몰, 또는 이미 익사하여 있는지 모르는 형편 아닌가? 심지어 '예수를 교회로부터 구출하라!'(로빈 마이어)고 외치는 소리도 듣게 된다. 오히려 교회가 마을과 이웃의 교회가 되고, 교인들이 건실한 주민으로 살아가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3. 조만간 교회와 목사들의 납세가 이루어지고 납세를 위하여 과세 대상을 파악하고 과세가 될 전망이다. 몹시 씁쓸하고 허탈하지 아니한가? 국가와 사회가 보기에 교회에 돈이 많이 있어 보이는가 보다. 교회는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해야 하련만(행3:6), 이제 별 수 없이 있거나 없거나 금과 은을 내놓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세상이 교회에 돈이 아니라 '예수를 보고자 하노라'(요12:21)함이 더 마땅하지 않겠는가?

4. 언젠가 이웃 교단 목회자 연말 세미나에서 타 교단 목회자들과 함께 '자기 소속 교단의 현실 과제와 갱신 방안'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공통된 발견은 교단과 교파를 막론하고 일선 교회들은 저마다 교회 회복과 재건과 부흥을 위한 간절함과 노력들이 절실하고 열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단과 교단 정치와 그 폐해에 식상할 대로 식상하여 있음이었다. 결론적으로 "교단 정치와 그것의 부스러기 챙기고 움켜쥐려는 이들은 배운 게 그것 밖에 없으니 그들끼리 침몰하는 선상에서 계속 그 짓 하라고 놓아두고, 정말 간절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되어가기를 갈망하는 교회들이 나서서 새로운 교회 시대를 열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이른바 교회 안나가 교인들의 교회, 작은 교회 운동 등등 현상은 일어나고 있지 아니한가? 총회는 눈 멀어있지 않기 바란다. 교회는 교단과 총회가 아니라 최종적으론 교회를 택하게 된다.

5. 이미 현대사회는 해체와 분화가 이루어지고, 개인의 시대가 되어 있다. 이런 흐름에서 이른바 '기교협, 한교연, 한장총, 한교총, 한기총'등등의 연합기관들의 이합집산이나 합종연횡 등등은 문법이 맞지 않는다. 특히 우리 교단 총회는 곳곳에서 계륵이 되어 있지 아니한가? 그 일은 그러기를 좋아하고 일삼는 조잡한 자들에게 남겨두고, 거기서 나와 일선 현장의 교회들을 섬겨 주기 바란다.

6. 인구절벽 시대를 바라보고 있듯, 교회 절벽 시대도 이미 와 있으며 그 나락 일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최근 대형교회들의 분열과 투쟁 및 목회자 세대교체 과정에서 드러난 온갖 파행들은 이미 그 시대가 종막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제 대형교회 분화와 해체 이후의 현실과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나와야 한다. 시설, 재산, 조직, 교인 분산 등등 교단적인 지침과 대응 방안이 강구되고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7. 통일과 평화의 시대를 바라며 지난 72년 분단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심각하고 위협적이며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으로서는 통일담론보다 상호안전과 평화와 공생 담론이 급선무가 되어 있다. 한국 기독교와 교회가 비로소 십자가를 지고 나서야할 자리가 있다고 본다. 이때를 위하여 한국교회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는지 모른다. 교회는 교회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대속의 섬김과 화해와 구원의 삶을 배우지 아니하였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화목제물 되어, 남북한 7000만 동포를 위하여 과연 그렇게 나서줄 수 있는 교회인가?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