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것도 진실 위에 서야 한다

[ 논설위원 칼럼 ]

곽재욱 목사
2017년 09월 13일(수) 09:39

북한이 마침내 수소탄 핵실험을 했다. 배타적 영역에서의 지하 핵실험의 여부는 지진계로 측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다른 방법이 없다. 지진계는 그것이 자연 지진인지 인공 지진, 즉 핵실험인지의 여부를 포함하여 그 진원과 규모 같은 비교적 소상한 것들까지 정확히 알려준다.

핵실험으로 인한 지진 규모로 보면 이번 지진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그 진원은 길주군 풍계리였고, 뒤 어어 북한 정권은 그것을 수소탄의 성공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지진의 규모를 미국과 일본, 심지어는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의 발표와도 큰 차이를 보여서 그것이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숫자가 아닌가 하는 걱정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그 진도를 6.3이라고 발표했고 일본은 6.1이라고 했는데 우리 정부는 그것을 5.7이라고 발표하였다. 진도에 대한 식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5.7과 6.3, 0.6의 차이가 작은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지진 규모가 0.2늘어날 때 마다 그 규모는 2배로 늘어난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발표와 우리나라의 발표와는 무려 8배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은 6.3이라는 미국과 중국의 발표가 맞는지, 혹은 6.1이라는 일본의 발표가 사실과 부합하는지, 아니면 5.7이라는 우리나라의 기상청 발표가 정확한지를 판별할만한 식견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 위, 바로 우리의 집 위로 떨어져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송두리 채 앗아갈 핵실험의 규모를 나타내는 진도가 미국과 중국이 높고 오히려 우리나라가 낮다는 그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사실 여부를 떠난 배신감을 느낀다.

그 사안에 관한한 다른 나라의 발표보다 우리가 더 걱정하면서 크게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호들갑'을 떠는 것이 올바른 모습 아닌가? 정부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배신감에 대해서 우리를 설득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붕괴로 추정되는 2차 지진은 미국, 중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다 같이 보고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추후적으로 그들의 발표를 듣고 인정하는 모양새다.

다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모든 문제는 그 어떤 이해관계에 따라 주물러져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개인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국내, 국제적 정치적 이해관계 같은 것에 의하여 마사지되어서는 안 된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특별히 권력자와 정부의 거짓말은 그 어떤 차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우선적 명제이다.

지난 정부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은 그들이 틀렸고, 그 대안으로서의 지금은 무조건 옳다는 이분법적 도식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하고, 그 마지막 결정도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이 시대의 정신과 그 정신을 넘어 선 준엄한 시대적 명령을 반영한 '역사적 멘털러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의 사람들이 축출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 진실의 종교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궁궐에 있는 권력자들의 야심에 의한 거짓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제사장들의 거짓말까지 혹독하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그런 가치관과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이 시대의 권력자들과 이 시대의 풍조에 대해서 이런 지적을 하려면 우선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최소한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마음을 쓰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지금 이 질문을 스스로 물으면서 몹시 부끄럽고 깊은 아픔을 느낀다. 아! 그런 수치심, 그런 아픔이라도 느꼈으면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겠다. 아! 우리 교계 빨리 첫사랑, 첫 마음을 회복하여 이 시대와 권력과 부를 향하여 가혹하고 준엄한 비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진도의 발표의 차이에 대한 발표 이전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선다면 그것이 우리의 생명에 관한 것이라 한들, 우리는 그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생명이 있기에 차마 예언의 입이 열려지지 않는 것이다.

곽재욱 목사
동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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