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들을 위한 공동체

[ 목양칼럼 ]

이경우 목사
2017년 09월 13일(수) 09:23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1801년 신유박해로 강진 사의재(四宜齋)에서 18년간 유배를 살았다. 정치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절망감에 젖어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결코 무력하지 않았다.

비록 더 이상 정치가로서는 이름을 날리지 못했더라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유배지에서의 삶은 사상적으로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유배기간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牧民心書, 1818)나 흠흠신서(欽欽新書, 1822)와 같은 빼어난 저서를 집필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이와 같은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는 가운데 많은 저작과 학문적 성과를 성취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선택한 자였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그는 오히려 도망자 신세가 되어 사울에게 쫓겨 다녀야 했다. 아둘람이라는 석회암 동굴로 숨어들 때에는 그의 정치적 생명은 완전히 끝이 난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골리앗을 꺾고 달콤한 승리를 맛본 뒤가 아니었던가!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절망감이 어떠했을지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목숨조차 기약할 수 없는 그에게,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곳에 무려 4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사무엘상 22: 1-3).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환난 가운데 놓였던 사람들, 가슴이 미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다윗은 그들과 함께 왕국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그 고통과 절망감을 딛고 오히려 더 큰 역사를 만들어간 것이다.

절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구라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가혹한 현실에 맞닥뜨리는 시간,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만 쓸어내리고 세상에 혼자 던져진 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하는 시간이 있다. 그 어느 누가 이를 피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미칠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던 때였다.

내 옆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무기력함에 시달리곤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크게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돌았다. 어느 날 문득 차일피일 미뤄두기만 했던 기질과 도형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소 강의를 하던 중 관련한 책을 써달라는 요구가 많았고 언젠가는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다. 패배감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 참혹한 처지에 놓인 스스로를 발견했던 그 때에 말이다. 하나님은 딱히 할 일이 없는 나에게 역설적이게도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삶을 이러한 방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마주할 때, 그분의 오묘한 섭리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쳐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삶에 힘을 불어넣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극심한 절망감이 밀려와 일어설 힘조차 없을 때에 새로운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부산청소년교회 아둘람청년공동체도 그러한 방식으로 세워졌다. 살아갈 힘이 없어 내일에 대한 두려움조차 사라진 때에 비슷한 심정을 가진 청년들이 마음을 모았던 것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 지도 7개월이 지났다. 상처로 아파하던 이들이 요즘 자신의 어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뜻밖에 '청소년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때가 되었다. 정약용과 다윗의 인생에서 보았던 것처럼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비집고 디디고 일어날 때에 하나님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이경우 목사
부산청소년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