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9월 4~9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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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01일(금) 15:14

월-은혜받은 자의 참된 모습
본문 : 행 4:32~35
찬송 : 197장

한 때 교회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3.1~3.8%의 소금물이 바다를 썩지 않게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영향력은 사라져가고 있다. '섬김과 순종으로 세워가는 행복한 교회' 저자인 김병태 목사는 해결책은 오직 은혜에 대한 회복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인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우리를 만나는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은혜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혜를 받았다면 더 너그러울 것 같은데 더 깐깐하고 더 야박하고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는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무리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은혜 받은 사람들은 공동체를 하나 되게 만든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믿는 무리, 즉 사도들의 말씀을 받은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은혜 받은 자의 첫 번째의 특징은 연합이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자꾸 공동체를 갈라놓은 짓을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자기 생각이 너무 커서 문제를 일으키고 이간질을 한다. 자기 마음에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둘째, 은혜 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 많은 성도들이 받는 것은 많은데 주는 것은 인색하다. 본문에 그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나서 초대교회 성도님들이 큰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받은 말씀이 무엇인가? 주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언이었다.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가? 복음을 들음으로 은혜를 받았다. 복음이란 죄와 허물로 망가지고 죽었던 나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들이 받았던 은혜는 십자가를 통해서 받았던 은혜이다.

셋째,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아는 것이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을 자발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재물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들은 물질뿐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은혜를 받은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은혜가 메말라 가는 시대에 우리들로 하여금 은혜 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시고 은혜를 나누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래 목사
덕포교회


화-중심에 서라
본문 : 전 7:15~18
찬송 : 342장

선택을 해야 하는데 결단이 어려운 때가 많다. 이쪽을 선택하면 저쪽이 문제가 생기고, 저쪽을 선택하면 이쪽이 어려움을 당한다. 그래서 중간을 선택해 피해를 줄여보려 하지만 막상 선택 이전 보다 더 고민이 많아진다.

오른편을 택하면 왼쪽이 아우성이고, 왼편을 응대하면 오른쪽이 서운해한다. 이 시대는 흔들리는 시대, 혼돈의 시대, 무 중심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화합과 야합이, 관용과 타협이, 지혜와 술수가, 조화와 왜곡이, 사랑과 아첨이, 참과 거짓이, 믿음과 광기가 뒤얽혀 뒤죽박죽이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주님은 '중심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 전도서 7장 15~18절은 중심에 서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한다. 경외를 뜻하는 히브리말 '야레'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서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두렵고 떨린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우리는 불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지만 우리는 한쪽으로 치우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우리는 더럽다. 두렵고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비록 의로우신 하나님 존전에는 떨더라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야 한다. 이 일을 이루고자 구체적으로 본문은 말씀한다. 

16절은 "지나치게 의인도 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한다. 넘치는 의인도 되지 말고 도가 지나친 지혜자도 되지 말라고 하신다. 지나치면 바로 서기 어렵다. 도가 넘으면 건덕하지 못하다. 능력이 지나치면 은혜롭지 못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성경은 경험적 지혜로 교훈한다. 18절은 "이것을 잡고 저것을 놓지 말라"고 한다. 우유부단이 아니라 지혜의 경중을 알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눈물로 일생을 지낼 수 없다. 그렇다고 웃기만 하고 평생을 살 수 없다. "즐거운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울음과 웃음사이에서 믿음으로 사는 이가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신다. 뱀과 비둘기, 뱀은 마귀의 표상이고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다. 신앙인이라면 양자택일 해야지 둘 다 취할 수는 없다.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신다. 뱀과 비둘기, 비둘기와 뱀, 이것을 잡고 저것을 놓지 말라고 하신다. 둘 중에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다 살리는 것이다. 지혜와 순결, 슬기와 순수가 함께 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비둘기 같이 깨끗하고 뱀같이 슬기로우라!

오늘의 기도
중심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순수, 순결과 슬기를 주시어 이 혼돈의 시대에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도진 목사
동신교회


수-행복한 사람
본문 : 요 12:1~8
찬송 : 211장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은 다르다. 사랑하는 마음은 그냥 마음일 뿐이고, 그 마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 나올 때 그것이 사랑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다 효자는 아니다. 그 마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효자다. 사랑은 마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며, 사랑의 마음은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으나 사랑은 힘들고 어렵다.

첫째, 마리아는 세상의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귀하고 값진 옥합향유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삼백 데나리온의 나드 향유보다도,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분이었음을 말해준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줄 만큼 주님을 사랑한 것이다.
사랑에 빠져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면, 그에게 선물을 사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 힘에 부치는 비싸고 좋은 것을 사주어도 행복하고 뿌듯하다. 마리아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귀하고 값진 향유를 부어드릴 만큼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생명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분,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둘째, 유다는 참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주님의 선택을 받고 부름을 받은 제자다. 주님을 따르고 섬기기 위해 두발 벗고 나선 사람이다. 3년 동안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수고하고 봉사한 사람이다. 더구나 회계라는 중책을 맡아 헌신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마리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마리아의 행동은 쓸데없는 것에 돈을 허비하고 낭비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리아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일이며 행복한 일인데, 유다에게는 왜 쓸데없는 일이었을까? 마리아는 자기의 돈을 쓰면서도 행복한데, 유다는 자기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분노했을까?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이라도 사랑 가득한 사람에게는 기쁨이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일이 된다. 사랑 없이 따르고 섬기는 유다는 불행한 사람이다.

셋째, 마리아가 향유를 부음으로 온 집에는 향유 냄새로 가득 찼다. 나드 기름의 향기뿐이겠는가? 마리아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에서 나오는 향기가 그 집에 가득 차지 않았을까? 구약시대 번제물의 연기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제물의 비린내가 아니라 제물을 바치며 예배하는 그의 사랑과 믿음과 헌신을 하나님께서 향기롭게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었다.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마리아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 역시 하나님께는 나드 향유보다 더 향기로운 냄새였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향기가 있는가?

오늘의 기도
더 깊이 사랑하고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보도록 인도해 주시고, 우리의 삶이 사랑과 믿음과 헌신의 향기를 내뿜도록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영석 목사
갈보리교회


목-회복을 꿈꾸는 예배
본문 : 욥 42:1~10
찬송 : 302장

욥의 삶은 고난을 상징하는 대명사와 같다. 그런데 욥은 그 곁에 함께하던 이들에게 조차도 따뜻한 위로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역경을 이겨내며 회복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욥의 인생이 힘든 고난 가운데서도 실패와 좌절로 끝나지 않고 갑절로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욥의 예배에서 찾을 수 있다. 욥은 고난 중에도 회복을 꿈꾸던 예배자였다. 그렇다면 회복을 꿈꾸던 욥의 예배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첫째로, 회복을 꿈꾸는 예배에는 회개가 담겨 있다. 욥기 42장 3절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고 했다. 욥기 42장 6절은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둬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했다. 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그런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던 힘든 논쟁이 욥의 회개가 있고 난 다음 하나님을 통해 결론내려졌다. 혹 우리 가운데 교회, 가정, 일터에서 정리가 안 되고, 힘들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이가 있다면, 지금 이 때가 하나님 앞에 회복을 꿈꾸며 회개의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아닐지 살펴보자.

둘째로, 회복을 꿈꾸는 예배에는 용서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욥기 42장 8절에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욥에게 가서 예배를 드리며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욥은 그 친구들을 용서하며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욥기 42장 9절 후반부에 보니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고 했다. 수소 7마리, 숫양 7마리는 욥의 친구들이 준비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이 아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친구들을 용서하며 예배드리는 욥을 기쁘게 받으셨다.

그렇다면 회복을 꿈꾸며 예배하는 욥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제 욥을 회복시키셨는가?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했다. 욥은 원수 같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욥을 회복시켜주셨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시며 회개를 외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용서하셨고,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주님은 인류의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열어가셨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 분 곁에 함께 서 있다.


오늘의 기도
우리로 회개하게 하옵소서. 용서하게 하옵소서. 힘들게 했던 이를 위해 기도할 때 회복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성 목사
공음교회


금-오후 세 시
본문 : 행 3:1~10, 10:1~8
찬송 : 364장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의 습관을 따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간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한다. '구 시'는 '오후 세 시'이다. '오후 세 시'는 일상의 한 중간이다. 오후 세 시, 긴급한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바쁘던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바빠지신다.

하나님께서 '오후 세 시'에 기도하는 베드로를 통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걷게 하신다. 40년 동안이나 방치되어있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오후 세 시'에 기도하고 있을 즈음, 로마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환상을 본다. '오후 세 시' 사도들이 기도하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예루살렘을 넘어 로마 군대가 주둔하는 가이사랴로 날아가 일을 한다.

오후 세 시에 기도하는 것은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선택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걷게 하고, 로마 군대의 백부장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은 사도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병자와 이방인을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만남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부정했던 병자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부정했던 사람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일하니, 이방인과 유대인이 만난다. 함께 성령을 경험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오후 세 시에 성전으로 올라가라 하신다. 오후 세 시에 성전에서 만민을 위해 기도하라 하신다. 바쁜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바쁘게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얻게 하신다.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은 이제 우리 자신이다. 세상의 바쁘고 급한 일로 경황이 없을 때에 성전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하는 것이다. 기도는 일상을 멈추어 쉼이요, 쉼은 숨을 마시는 것이다. 기도는 숨이신 성령을 마시는 것이다. 기도할 때 오후 세 시는, 성전이지만 마른 뼈 같은 우리가 군대처럼 일어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다.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오후 세 시, 바쁘고 긴급한 일상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하나님께서 대신 일하실 것이다. 병자와 이방인마저 정결하게 하시며, 그들과도 하나가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신다.

오늘의 기도
급한 일을 멈추고 중요한 기도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쉬지 않고 기도하라 하셨으니, 모든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일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준 목사
민들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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