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인성 <完> 전인적 삶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교육의 총체    

[ 기독교교육이야기 ]

우수호 목사
2017년 08월 29일(화) 14:46

모든 교육은 '한 사람의 성숙과 인성적 완성'에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닮은 존재로 창조된 인간의 온전한 '하나님 형상(Imago Dei)의 회복과 완성'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일탈적 현상은 올바른 인성교육과 깊은 관계가 있다. 부정과 부패 등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일탈 현상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교육적 가치와 큰 관계가 있다. 입시와 성적위주의 단편적 결과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다양한 체험을 통한 인성의 발달과 성숙'을 도모하는 교육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때 극복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교육적 시행착오는 우리나라만 겪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도 획일화, 경직화, 소수를 위한 교육, 주입식, 피상적, 일시적, 시험공부 중심의 교육을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인성훈련 교육으로 개혁하고자 노력했으며, 영국은 기숙학교, 전원학교, 수공예 작업, 도보와 자전거 여행, 관찰과 질문, 독창성, 자발성과 자율성, 협동, 절대 평가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학교 운동'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독일은 책 중심의 주지주의 교육, 삶과 괴리된 백과사전주의 교육에 머물러 있던 학교교육을 '감성, 삶, 자연 등'을 강조하고, 윤리적 인성으로서의 교육, 신뢰와 사랑, 진지성 등의 개념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전환하고 전원기숙사생활, 놀이, 육체노동, 예술활동, 종교교육 등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나라들의 노력 중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인성교육의 중요한 영역 중에 종교교육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느 나라보다 종교교육에 대해 부정적이고 배타적이다. 사실 오늘날 경쟁과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메마르고 비인간화된 교육현장에 종교교육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많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종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종교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큰 흐름은 이성 중심의 헬레니즘과 신앙 중심의 헤브라임 둘로 나눌 수 있다. 종교적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학문은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철학, 예술, 종교 등으로 분류된다. 학문의 영역에도 종교가 포함되어 있다.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선입관과 편견으로 종교교육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한 인간의 완성을 위해 종교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종교가 갖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 그래서 학문의 영역에 종교를 꼭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종교교육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어서 훌륭한 인성적 성장과 삶의 의미를 배우고 더욱더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사립학교 뿐만 아니라 공립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건강한 종교를 배우고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인성의 영역은 관계된 학자나 전문가에 따라 주장하는 영역과 주제가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각의 학자나 전문가가 말하는 인성의 요소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성의 요소는 사실상 무궁무진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정직, 성실, 책임감, 긍정적인 태도, 순종, 경청 외에도 청결함, 절약, 정리정돈, 친절, 포용력, 민감성, 독립성 등이 포함된다. 그 밖에도 인성의 영역은 무한히 더 존재 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적 관점에서 모든 인성의 근원은 '하나님의 속성, 곧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 인성은 곧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속성의 일부이고 그 속성은 인간의 인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인성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속성을 연구함으로 명확히 알 수 있고 바르게 교육할 수 있다.

끝으로 진정한 인성교육은 일정한 장소에서 몇 번의 인지적 교육과정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사물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형편과 처지를 살펴서 도와주려고 마음을 쓰는 '배려'에 대해 가르치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아이가 배려의 분위기와 상황에 놓여서 온 맘과 몸으로 '배려'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배려'를 말하지 않아도 만나는 그 선생님과 그 공간에서 배려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교육이 된다는 의미이다. 곧 인성은 인지적 가르침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 삶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교육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 이번호를 끝으로 교육칼럼 '열려라, 인성' 연재를 마칩니다. 집필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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