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이 심어지던 그때

[ NGO칼럼 ]

조병성 목사
2017년 08월 22일(화) 14:03

10월 16일, 젊은 그들이 일어섰다. 김성철, 정택정, 송세안, 이춘원, 송정우, 김현순, 이재서 한국밀알선교단 창립 멤버 7인의 이름이다. 20대 초 중반의 대학생들이다. 창립 자금이라는 게 있을리 없었다. 가진 건 젊음, 그리고 순수함. 그들은 젊음과 순수함을 주님께 드리고,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송세안은 밀알보 2호에서 이렇게 외쳤다. "복음 전하는 것이 인재 발굴을 위한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이 세상 적으로 뛰어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구원 받아야 할 영혼이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동정의 차원에서 대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항변이다.

이재서는 '횃불회'라는 민족복음화를 위한 모임에 참석하여 장애인복음화에 관한 뜨거운 소회를 밝혔다.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100만 장애인을 위해서는 단 한 번이라도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이것은 여러분 뿐 아니라 전 한국 교회의 모순인데 그들을 제외시킨 민족 복음화가 옳은 것입니까?”

이러한 생각들이 그들 7인의 가슴에 타오르고 있었다. 1979년 8월이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이 강원도 원주에 있는 성광원이라는 시각장애인 마을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했다. 이 봉사활동을 계기로 장애인들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도전하게 했다.

이들 7인의 중심에 이재서가 있었다. 그는 16세 때 질병으로 인해 실명했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다가 21세 때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다. 예수의 빛 속에서 그는 행복을 찾았다. 눈으로는 여전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그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는 많은 장애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를 전하고 싶었다. 생명과 소망의 예수를 전하여 장애인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꿈을 위해 총신대학교에 입학했고 꿈을 가시화하기 위해 장애인선교기관을 만들고 싶었다. 그의 이 생각이 지속적인 봉사활동의 필요를 느끼게 된 그들의 가슴 속을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이들은 요한복음 12장 24절을 주목하고 묵상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거의 없는 이 땅에 밀알 하나로 떨어져 죽고 싶은 마음이 점점 뜨거워졌다. 한국밀알선교단이라 이름 짓고 3대 목적을 정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 16일 성서유니온 강당을 빌려 창립 예배를 드렸다.

한국밀알선교단 3대 목적은 다음과 같다. △전도- 장애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 어떤 다른 가치 보다 앞세우겠다 △봉사-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장애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돕겠다 △계몽-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사회와 교회의 편견의 벽을 허물겠다.

조병성 목사
한국밀알선교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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