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7~1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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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04일(금) 17:15

월-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본문 : 막 14:3~8
찬송 : 453장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믿음을 지키기가 참 어렵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중세 교회가 그랬다. 로마의 박해를 견디던 교회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서 있었지만,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면서부터 오히려 교회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기 시작해 중세를 암흑기로 만들어 버렸다.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예배는 자유롭게 드렸지만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갖기가 어려웠다.
그러면 너무나 평안하면서도 온갖 죄의 유혹이 가득한 오늘 어떻게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본문 말씀에는 한 여자가 최상품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자.
첫째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이 여자의 행위를 본 어떤 사람들이 향유를 허비한다고 화를 내며 책망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가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셨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한 이 일에 왜 사람들이 화를 내고 책망할까?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을 만족시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즉 기준이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분이 예수님이라면 우리 믿음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 뜻, 즉 하나님의 뜻이 바로 우리 믿음의 기준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행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다.
둘째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그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의 기준에서 그 여자의 믿음은 힘을 다하는 사랑으로 표현되었다. 그 믿음의 헌신과 사랑을 받는 예수님의 기준에 힘을 다하는 것이 바른 믿음이다.
예수님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 묻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답을 대신하신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것은 바로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 우리 마음에 두고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주님께 응답으로 드리자.
셋째, 감격의 눈물이 있어야 한다. 본문 말씀과 같은 일을 기록한 누가복음은 이 여자가 죄인이었고, 자신의 죄가 용서받은 것이 감사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었다고 기록한다. 이 여자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있었다. 우리의 믿음에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은혜로 인해 기뻐하는 감격의 눈물이 필요하다. 이 눈물이 우리의 믿음을 건강하게 세워주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한다.

오늘의 기도
어느 때보다도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운 이 때,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믿음의 기준으로 삼는 믿음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행수 목사
주평교회


화-변화시키시는 하나님
본문 : 요 4:3~14
찬송 : 372장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가 많았던 여성이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 우물가에 찾아온 것을 보면 그 상처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대인기피증을 앓을 정도로 고독하고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된다. 그 변화는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야 하니…"(28~29) 그 여인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킨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고통과 고난이 해결되고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킨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첫째,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절대로 지나가지 않았던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 고난 중에 있던 사마리아 여인을 먼저 찾아오셨다. 우리는 때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다. 우리가 죄인이고, 연약하고, 쉽게 넘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항상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둘째,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오신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여인의 상처와 처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신다. 우리의 고통, 상처, 처지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셋째, 영원한 샘물이신 예수님이시다. 사마리아 여인은 육신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늘 그녀에게는 목마름과 부족함이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육신의 만족은 영원할 수 없다. 늘 목마름과 부족함이 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영적인 물로 우리를 채우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떡이고 물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마음에 채우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킨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육체의 만족이 아니라 영적인 만족을 위해 살아가야 하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게 하셔서 영적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은혜가 풍성히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선 목사
마천세계로교회


수-기도의 응답
본문 : 왕하 20:1~6
찬송 : 365장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병이 들어 죽게 된 그는 낯을 벽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전심으로 기도했다. 드디어 그의 눈물의 기도는 상달되어 병이 낫고 수명이 15년 연장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기도하였기에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까?
첫째로, 히스기야는 통곡하며 전심전력으로 기도했다. "히시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2절)라는 말씀은, 히스기야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대해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였던 것이다. 일국의 왕으로서 세상의 좋다는 의학, 의술을 누릴 수 있는 위치이었지만 세상의 모든 방법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태도이다. 우리도 통곡하며 전력을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기도의 힘이 발휘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도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며 마음과 뜻을 다해 전심전력으로 기도한다면, 마치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히스기야는 평소에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했다. 이러한 삶을 살았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 그토록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히스기야가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결코 담대하고 절실하게 기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전심전력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다.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 때,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교회의 신앙간증을 간략하게 하려고 한다. 췌장암 말기로 수술과 항암치료도 받지 못한채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젊은 집사님이 있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심전력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온 교회 교우들이 내 일처럼 여겨 매일 새벽, 밤으로 금식하며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아버지가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고 구원받았으며,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교회에 나와 세례 받고 구원받았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처럼 젊은 집사가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니 생명을 5년 연장시켜주셔서 가족, 친척을 구원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오늘의 기도
히스기야처럼 우리도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범사에 진실하게 행하고 기도에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탁영구 목사
용강교회


목-열매는 좋은 밭의 씨를 통해
본문 : 마 13:18~23
찬송 : 148장

오늘 본문 말씀은 공관복음서 전체에 나오는 내용이다. 바닷가에 나온 큰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을 큰 무리들이 돌아가고 한 사람이 제자들만 남았을 때에 비유가 무슨 뜻인가를 질문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농부가 씨를 뿌린다. 길에 떨어지니 새들이 먹어버렸다. 돌밭에도 떨어지니 흙이 적어서 싹이 났으나 말라버렸다. 가시떨기에도 떨어지니 가시가 자라서 기운이 막혀서 자랄 수가 없다. 좋은 땅에도 떨어지니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이 있었다라고 하시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좋은 땅에다만 씨뿌리자 하고 무리가 돌아간 후에 하신 말씀이다. 씨는 천국말씀이다. 천국말씀이 뿌려졌다. 어디에 뿌려졌는가?
첫 번째로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길가와 같은 우리 마음이다. 주일이면 교회로 가서 설교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의 천국의 말씀이 뿌려지는 시간이다. 어떤 마음으로 와서 앉아있느냐에 따라 결실을 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됨을 말한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려고 집중하지 않는,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는 자리에 있기만 하면 열매 맺는 줄 아는,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구원받을 줄 생각하는 그 마음에는 말씀이 뿌려지기는 하지만 깨달음이 없다. 그것은 사단이 말씀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돌밭에 떨어졌다. 우리 마음이 돌같이 굳어진 것을 말씀하신다. 선지식이 우리마음에 있어서 설교를 들을 때에 어떤 말씀에 대해서는 '저건 아닌데'라면서 말씀을 자기가 먼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쁨이 금방 사라져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다.
세 번째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서 결실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말씀의 자리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지만 삶과 연결이 안될 때 결실이 없음을 말하신 것이다. 무엇을 염려하는가?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필요한 것을 다 채우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열매가 없다. 천국이 없다.
네 번째 좋은밭에 떨어졌다.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결실이 있다. 어떤 것은 100배, 어떤 것은 60배, 어떤 것은 30배라고 하셨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결실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밭에 하나님 아들의 씨를 우리 마음에 뿌리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마음밭은 바로 좋은 마음밭을 가진 자만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
좋은 마음이란 비고비인 마음이다. 다시말하면 자기의 생각, 지식,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싹이 나고 열매 맺을 수 있는 마음이다(마 5:3).

오늘의 기도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만 열매 맺을 수 있는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순옥 목사
신산교회


금-당신은 누구십니까?
본문 : 마 4:18~22
찬송 : 430장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기 위해서 갈릴리 호숫가로 가셨다.
그곳에는 평생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수많은 어부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다. 많은 어부들 가운데 유독 그들을 부르신 이유를 본문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물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에너지 넘치는 역동성을 보셨다. 물고기들이 도저히 피해나갈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활기차게 펼쳐지는 그물을 보시고는 베드로가 복음의 그물을 힘차게 던지는 상상을 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제안하셨고, 베드로 형제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의 장점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를 일깨웠고 그의 강점을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도록 그의 시야를 넓혀서, 시각을 교정해 주셨다.
또한 예수님은 이어서 다른 두 형제,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그들이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다. 그물을 깁는 모습은 그물을 던지는 모습에 비해서 비교적 정적이고 여성스러운 모습이다. 밤새 내렸던 그물을 끌어올려서 물고기와 찌꺼기들을 떼어내고 찢어진 곳을 깁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모습에서 그들만의 장점을 알아보셨다. 그래서 이들을 '그물 던지는 자'인 베드로, 안드레와 똑같은 제자로 망설임 없이 부르신 것이다.
역동적인 베드로와 정적인 요한은 비록 특성은 다르지만 각기 장점대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았다. 베드로는 한 번 설교하면 3000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복음전도자로 쓰임받았다. 반면 요한은 정적인 장점으로 차분하게 성경을 기록하는 일에 쓰임받았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이서, 삼서, 요한계시록 등 주옥같은 성경 말씀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게다가 요한은 정적인 장점을 잘 살려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하는 일도 맡았다. 노년의 마리아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은 요한이 다른 공관복음들과 전혀 다른 영적인 요한복음을 기록하는 데 훌륭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물 던지는 자'일까? 아니면 '그물 깁는 자'일까? 나의 모습은 나만의 장점이며 강점이다.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 올바로 발견하라. 그리고 그 장점과 강점을 살려 가라. 하나님께서 나를 오늘날의 베드로로, 오늘날의 요한으로 꼭 필요한 분야에서 사용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주신 창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 모습 이대로 제 기질과 성격과 장점 그대로 쓰임받기 원합니다. 나를 써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융희 목사
성민교회


토-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
본문 : 사 55:6~7
찬송 : 528장

두 세 살 된 아기가 엄마를 찾듯이, 뭔가 배우기를 원하는 자가 스승을 찾듯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자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아모스 5장 8절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고 함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섭리하시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아모스 5장 4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셨다. 인생은 하나님을 찾아야 살 수 있고, 안전하고, 복되고, 기뻐할 수 있다. 사람이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언제 어떠한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할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하신다. 만날 만한 때는 어느 때일까?
첫째, 시편 27편 8절에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라고 한 다윗의 믿음의 고백을 볼 때 여호와께서 한 영혼을 찾으실 때가 있고, 찾으시는 여호와께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여호와를 바라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때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임을 알 수 있다.
본문 7절을 보면 내가 악인의 길로 들어서서 불의와 함께 짝 함으로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죄 가운데 먹고 마시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아 갈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되 죄인임을 아는 자를 사랑하신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그 순간이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인 것이다.
셋째, 사무엘하 22장 31절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라고 했다. 곤고한 인생길을 가는 동안 힘겹고 어려울 때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이다. 육신의 질병과 환경의 어려움과 하는 일들이 형통치 못하고, 인간관계가 여의치 않으며, 마음에 낙심이 깃들고, 의욕이 떨어지며, 모든 것이 싫고 미워질 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의 모든 곤고함이 해결되고, 채워지고, 고쳐진다.
지금 나는 어떤 때를 맞이하고 있나? 그 때가 바로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이다. 여호와를 찾아야 할 때이다.

오늘의 기도
세상에 속한 많은 것을 찾아 헤매는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찾을 때 속히 응답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찬종 목사
대구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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