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목회의 예술적 실천 (1)교인들의 눈높이 달라진다

[ 특집 ] 교회, '문화적 지도력' 회복하자

성석환 교수
2017년 08월 03일(목) 08:29

성석환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국사회에서 문화에 대해 의미있는 담론의 장이 펼쳐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조치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그 방향은 대략 두 가지였는데,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문화사회'에 대한 논의, 즉 민주주의를 문화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논의가 한 방향이었고, 또 하나는 대중문화의 확산 국면에서 국가와 기업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며 형성된 문화산업의 성장이 또 하나의 방향이었다. 

'문화사회'에 대한 담론은 대중문화를 통해 분출되던 개인들의 욕망기제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잠재적 역량으로 전환시킬 방안을 모색하였다. 억압되어 있던 시민, 대중의 욕망이 거침없이 분출되면서 혼란한 시기를 거쳤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개개인의 욕망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평가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문화적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성장은 또 다른 면에서 새로운 자본축적의 장이 확인된 셈이었다. 정부는 한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문화산업을 키웠고, 기업들은 문화적 상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대중문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궤도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절대화하고 쾌락을 극대화하면서 급속히 소비주의 문화에 흡수되어갔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면서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서비스 산업이나 문화산업으로 급속히 재편되었다. 

이런 문화적 변화의 두 방향은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고 SNS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되면서 더 극적인 가속도를 얻게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의사전달 방식을 거부했고,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이념적 성향은 확연히 약해졌으며,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다방면에서 전개했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부터는 세대 간의 갈등과 충돌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여름성경학교'나 '문학의 밤'(각 교회마다 이름은 달랐다) 등의 교회행사가 동네와 마을의 행사였다. 

민주화 이후에 한국교회는 그 동안 누렸던 '문화적 지도력'을 급속히 상실했다. 당시 한국의 주류 교회들은 '문화사회'라는 담론의 장에 참여할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고, 문화산업과 대중문화의 도전에는 성숙한 신학적 토론보다는 비판하고 부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당시 가장 유행했던 문구인 "마침내 사탄이 대중문화를 선택했다"와 같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대중문화를 비판하였지만, 형식적으로는 대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사회는 점차 다원적으로 변해갔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획일적이고 단일한 진리추구 방식을 문제 삼았으니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진리체계가 위협받는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이러한 위기감을 더 고조시키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했던 세력들이 당시 한국교회의 문화적 실천을 주도했었다. 

그러나 동시대 문화와 결별하면서 결코 복음을 증언할 수 없다는 신학적 반성이 곧 등장했다. 이러한 반성은 과거 민중신학이나 토착화신학과는 달리 문화신학 혹은 대중문화에 대한 신학적 해석학 등의 시도를 통해 전개되었다. 

탈이념의 사회적 분위기와 젊은층의 문화적 감수성을 교회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론이 모아졌고, 특히 포스트모던 사회의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은 미국에서 큰 영향을 끼쳤던 '열린 예배'나 '이머징 처치' 운동을 통해 한국에 전수되기도 했다. 드라마, 미술,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교회가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당시 이른바 '문화선교'라는 신학적 담론이 형성되었다. 영화를 보며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새신자들에게 복음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공연하기도 했다. 특히 CCM은 급변하는 동시대 문화를 교회 안으로 수용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는 이러한 형식적 수용이 너무 무비판적인 것은 아닌지 반성도 있었지만, 이미 한국교회는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크게 노출되었고, 복음을 대중문화나 예술을 통해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꽤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21세기가 10여 년쯤 지나면서, 특히 한국교회의 신학적 토론들과 문화적 실천들을 점검하게 되었고, 대중문화의 형식적 수용이나 선교적 대응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목회현장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지역교회가 지역사회에서 '문화목회'를 통해 복음을 문화적으로 증언하며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카페, 도서관, 공연 등의 시설을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예술적 활동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이다.

'문화목회'는 '문화선교론'의 신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선교를 지역에서 문화적으로 실천하는 모든 활동이다. 특히 '문화목회'의 문화적 실천에 있어서 예술적 영역이 매우 중요하다. 예술은 인간의 자아정체성을 균형있게 형성하는 일에 필수적이다. 20세기 초에 예술과 대중문화를 구별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오히려 예술을 대중문화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예술의 대중화를 추구하고 있는 시대이다. 

예술은 어렵거나 또 일상생활과 상관없는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영성에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신학적 미학'은 모든 신앙인이 예술가의 감수성과 영성을 구비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스러움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문화의 형식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예술적 표현들, 즉 영화, 노래, 시 등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술적 훈련은 신자들의 신앙적 깊이와 눈높이를 성숙하게 인도할 것이다. 

한국사회처럼 갈등과 충돌이 만연한 사회에서,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예술적 참여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어 화해를 이끌어 가는 '문화적 지도력'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화목회'가 기독교 영성의 깊이를 예술적 형식으로 표현하여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면 선교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매우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예컨대 이제는 사라져버린 '문학의 밤'과 같은 예술의 축제를 절기나 지역축제를 활용하여 다시 복원한다면, 시와 노래와 그림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공동체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목회'만이 아니라 교인들이 예술을 통해 복음을 증언하는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그동안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원론적 신앙관을 극복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만나는 좋은 훈련도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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