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공보 기획> '작은 거인' 이재구 장로

[ 교계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7년 07월 24일(월) 09:27
▲ 이재구 장로.

초등학생 시절 반에서 수십명씩 전도하던 이가 있다.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도 주체할 수 없던 구령의 열정을 배경으로 19세부터 교회학교 보조교사를 시작해 30여 년간을 교사로 활동한 결과 한국기독교교육대상을 비롯한 각종 교육 표창을 수상했다.

어려서부터 '전도왕'으로 통한 이재구 장로(한마음교회 은퇴)의 간증이다. 그의 전도법은 독특했다.

또래 친구들이 싫어하던 숙제를 완벽하게 해오고 답을 알려주면서 교회로 인도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숙제 해결사'였다.

이재구 장로는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외가쪽이 일찌기 복음을 접하고 수많은 목사와 중직자를 배출했다.

모태신앙인으로 집앞에 있던 영주제일교회를 출석하다 40대 초반 직장관계상 구미로 연고지를 옮길 때까지 안수집사로 섬겼다.

성장과정에서 영주제일교회는 교육장이자 인격을 형성하는 훈련장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체구가 작고 왜소해 남 앞에 나서기가 꺼려지며 위축됐던 마음을 교회에서 달랬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 눈에 띄어 칭친과 택함을 받았던 것에 위로를 받고 살아왔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생각이 잦았고 뭔가 주도적으로 앞장서는 일을 스스로 기피했지만 나 혼자 하는 일은 자신감이 넘쳤던 성장과정에서의 기억이 납니다."

▲ 한국기독교교육대상을 수상하고 있는 이재구 장로. 어려서부터 친구들 전도에 열심을 내던 이 장로는 교회학교 교사로 30여 년을 봉사하며 누구보다 영혼구원에 앞장섰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교 추천으로 경북도지사 효도상을 받을 정도로 구별되는 삶을 살았다. 그가 다섯살 때 아버지가 6.25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해 전사하면서 홀로 지내던 어머니가 신앙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효도와 순종만이 어머니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 장로는 지금도 95세 고령의 어머니 이순남 권사를 모시고 교회를 다닌다. 올곧은 신앙을 물려준 어머니는 관절이 좋지않아 휠체어 신세를 지지만 교회는 빠지지 않을만큼 열정적인 선교여성이다.

이 장로는 "어머니의 기도는 내 삶을 지탱해준 지지대였다"며 "나는 말도 잘 못하고 용기도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았음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만해도 중학교 입시제도를 준비하는 과외가 성행해 과외선생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족집게 선생'으로 입소문이 나며 한때 초등학생 70여 명 정도가 몰릴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가르치던 아이들을 전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모든 분야의 봉사를 앞장섰다. 자신의 부족함을 기도 중에 깨달은 것이 계기였다. 교회를 다니지 않던 친구들이 교회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줄 알 정도로 열심이었다.

"어느날 기도 중에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마음에 진정 하나님이 있느냐? 있다면 너의 부족함을 채울 것이다'라는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어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체험하며 교회 봉사에 매달렸습니다."

▲ 이재구 장로 가족. 이 장로의 어머니 이순남 권사는 아들과 후손들에게 올곧은 신앙을 물려준 선교여성이다.

정부가 바뀌고 '과외 금지령'이 내려지며 회사에 취업했지만 주일(일요일)에도 간혹 일해야 하는 환경이라 그만두고 여동생이 사업을 제안해 구미로 터전을 옮겼다.

구미에서 여동생이 오픈한 목욕탕의 관리를 20여 년간 맡았다. 목욕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며 정리하고 최근에는 교회 은퇴 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녹색선교 등의 사역에만 매진하고 있다.

어려서 집 주변이 온통 산이라 자연스럽게 '산 타기'를 즐긴 그는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산하 환경녹색선교단 단장을 역임할만큼 등산 매니아다. 그는 수백 곳의 산을 오르내리며 등산로의 오물을 줍고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환경보전 캠페인을 펼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 그는 경북 칠곡의 시골로 들어갔다. 신앙의 동반자인 부인 정금숙 권사가 대장암에 걸려 치료차 이곳으로 옮긴 후 완치 판정을 받아 또다시 특별한 감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주택은 거실이 넓다. 남 앞에 서기조차 꺼리던 그가 신앙을 통해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변화하며 집으로 찾아오는 이들과 거실에서 신앙교제를 나누기 위해 넓게 건축했다.

"하나님께서는 비좁은 마음이 넓어지고 모자라는 부분을 멘토이며 죽마고우인 권태진 장로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을 통해 채워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의 모습은 물론 언어와 행동 하나하나에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도록 노력하면서 은혜의 구름 위에 사뿐히 머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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