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목회

[ 목양칼럼 ]

손주완 목사
2017년 07월 18일(화) 15:42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의 하는 일이 '목사'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 '교인이 몇 명이냐?'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우리 교회는 시골에 있고, 우리 교인들은 1800명'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거나 웃는다. 아마도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친구목사와 함께 닭 1800마리를 키운다. 자연양계(야마기시 양계법)방식으로 유정란을 생산한다. 우리 닭들은 '사는 동안' 그래도 행복하게 산다. 우리 닭들이 행복한 이유 일곱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1.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2. 암수가 같이 살아야 한다. 3.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4.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셔야 한다. 5. 신선한 먹이(발효사료와 풀)를 먹어야 한다. 6. 밤이 되면 편안한 잠을 자야 한다. 7. 알을 자유롭게 낳아야 한다. 나는 그 닭들을 키우며, 돌보며 산다. 나에게 교인은 '닭들' 이다.

목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사람을 목회하는 것만이 목회가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 등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돌보고 키우는 것도 목회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우주, 태양계, 지구 그리고 그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동식물과 자연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앞에는 개울물이 흐른다. 미륵산(해발 689m)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서로 부딪히고 어우러지며 소리를 낸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淨化)한다. 아침이 되면 물소리와 함께 새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밤이 되면 온갖 벌레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노래한다.

모든 자연은 서로 어우러져 '주거니 받거니'하며, 자신들의 생명을 살아간다. 그 생명은 누가 개입하거나 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유지되고 이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그렇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다. 그래서 '자연(自然. 스스로자 그럴연)'이다. '스스로 그렇게 있음'이다. 비틀즈는 'Let it Be!'라고 외쳤다. 하나님도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에예 아셰르 에예)'라고 말씀하셨다.

AI(Avian Influenza, 조류독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조류독감의 원인이 '철새'라고 말한다. 철새들은 괜히 오해만 받는다. 사실 모든 바이러스는 상존(常存)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조차 자연의 일부이다. 철새들도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으며, 감염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집단적으로 '폐사(斃死)'하지 않는다. 문제는 스스로 살아가고,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다. 의학적 용어로 말하면 '면역력'이고, 사회학적 용어로 말하면 '자립성의 증진'이다.

우리가 키우는 닭들은 그렇게 스스로 이겨내도록 만든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이겨내고 견뎌내고 살아남는 힘을 가지도록 돕는다. 최선을 다해 사는 길을 찾으며, 최선을 다해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도록 만든다. 닭들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으니, 닭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질서대로 순응(順應)한다. 그 닭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인간으로서의 '나'는 그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긴다.

'닭을 목회한다'는 말의 어원은 아마도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에 있지 않을까? 사람을 목회하는 원리도 같지 않을까? 교인들도 스스로 '신앙의 면역력'을 높여, 이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립적인 존재로 사는 신앙인이 되도록 '목회(牧會)'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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