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장군 맥아더

[ 4인4색칼럼 ]

이정용 집사
2017년 07월 04일(화) 14:35

이정용 집사
한반도포럼 사무총장ㆍ충신교회

맥아더 장군의 가문은 신앙의 명문가였다. 처칠, 루스벨트, 맥아더 모두 한 할머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맥아더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주지사, 대법관 출신이고, 아버지는 남북 전쟁의 영웅으로 육군 3성 장군이었으며 필리핀 총독을 역임했다. 어머니는 미국 남부 기독교 가문에서 자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바탕으로 맥아더를 키웠다. 맥아더는 텍사스 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매일 아침 8시23분에 성바오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맥아더가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4년 동안 학교 정문 건너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숙박하며, 매일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렸으며 성적 관리를 도왔다.

맥아더는 신앙생활에 원칙이 있었다. 우선 금주를 했고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했으며, 전장에서도 경건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 교만하지 않았으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필리핀 해방과 서울 수복 때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그가 잊지 않았던 것은 주기도문을 같이 읽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었다.
일본 기독교 역사에도 부흥의 시기가 있는데, 맥아더 장군의 총독 재임 시절이었다. 당시 일본인 25만 명이 기독교인으로 등록했는데, 총독 시절 맥아더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해 많은 정책을 펼쳤다. 

맥아더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참전한 지휘관으로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그 누구보다 더 적진에 앞장서서 진격했다. 지휘관이 앞장서 나가다가 먼저 목숨을 잃는 것도 사기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맥아더 장군에게 항상 영감과 희망을 주는 성경구절은 시편 23편이였다. 그리고 매일 주기도문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병사들의 죽음에 위로의 편지는 이렇게 썼다. '병사들의 죽음에 호곡하는 어머니들이시여,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오직 나사렛 예수님의 희생과 광휘가 아드님들의 영전에 강림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당신께로 인도하시리라는 것뿐입니다.' 장군은 34년 동안에 단 하루도 병으로 누워있지 않을 정도로 건강관리에 철저했다. 최고 사령관의 조종사였던 앤소니 스토리 중령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보내는 편지 서두에 이렇게 썼다. '장군님, 저는 이 엽서를 하나님과 함께 걸으시고 대화하시는 분께 보냅니다.'

맥아더 장군은 2차 세계대전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상륙작전을 84회 전개했는데 모두 성공했다. 참모들을 통해 보고받는 것은 물론, 직접 작전을 개시할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도 7회 이상 전장을 직접 방문해 확인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끝으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맥아더 장군은 사라졌다. 이 나라를 위해 산화하신 참전용사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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