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논단 ]

배혜수장로
2017년 07월 04일(화) 14:24

우리 교단 산하의 모든 신학대학교들은 학부(신학과) 과정이나 신학대학원 과정에서 성경 원어의 문법을 배우도록 하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배우는 수준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성경 원어의 문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이 의무적으로 학점을 취득해야 하는 필수과목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선택과목으로 원전강독 수업이 있기도 하다. 물론 성경 원어는 우리말처럼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에 관계없이 배우기가 쉽지 않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속도도 아주 빠른 편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한국의 목회자들 중에는 설교할 때마다 원어로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직접 찾아서 읽고 해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필자 자신조차도 주석 원고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원어 성경을 찾는 경우가 아주 드물기에 하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굳이 고생하면서 성경 원어를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된 우리말 성경이 개역 개정판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가 있고, 또 영어나 독일어, 불어 등으로 번역된 것들도 많으니, 그것들을 참고하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책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위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책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구약성경의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고, 에스라 4:8~6:18; 7:12~26; 다니엘 2:4하~7:28; 예레미야 10:11; 창세기 31:47("여갈사하두다") 등의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본문은 불완전하거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무수한 사본들(또는 사본들의 필사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본들 중에 어느 것도 성경 저자나 그의 동시대인에 의해 기록되지 않았으며, 저자 바로 다음 세대에 살았던 필사자에 의해 기록된 것도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른바 원본이 없다는 얘기다. 

또한 현재 남아 있는 사본들이 전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 본문들 중의 상당수가 이들 외의 다른 많은 언어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 까닭은 성경 본문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그것이 또 다시 반복적인 필사 작업에 의해 계속해서 후대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성경 본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들로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본문들에 담겨진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서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구절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 사본들이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신앙 공동체에 의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어 온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앞선 세대의 사본을 손으로 베껴 쓰는 서기관도 인간인지라, 긴 본문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범할 수 있고, 또 드물기는 하지만 필사 작업이나 번역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기관 내지는 필사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을 가하여 본문을 수정할 수도 있다. 더욱이 필사 작업이 오랜 세월 동안 되풀이되다 보면 오류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마련이며, 여러 지역에서 유통되는 사본들 사이의 차이 역시 조금씩 늘어나게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어떠한 사본이 가장 원본에 가까운 것인지를 확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면 무수한 사본들을 서로 비교하여 각 본문의 가장 원래적인 형태 내지는 가장 받아들여질 만한 최선의 본문(the best text)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최선의 본문을 재구성하거나 확정하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성경의 기본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및 헬라어 등의 문법을 잘 알아야 하며, 이 언어들의 구문론이나 의미론까지도 알면 더욱 좋을 것이다. 물론 그처럼 심층적인 작업은 성경 연구 전문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공부하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목회자라면, 최소한 성경 원어의 문법 정도는 공부해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문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성경 본문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성경 본문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들을 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과목인 원전강독 수업을 통해서 한층 깊은 본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번역된 성경에 문법적인 실수들과 번역상의 오류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수 있다. 성경 원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는 또한 성경 연구 전문가들의 다양한 논문들과 글들을 읽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한층 심화시켜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목회자들로 하여금 일평생 말씀으로 성도들과 교회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신학생들에게 성경 원어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성경 원어 공부는 신학대학교의 커리큘럼에서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말씀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돕는 원전강독 수업에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 학점 상향 조정 같은 약간의 혜택을 주는 방안도 생각해봄직하다. 성경 원어 중심의 성경주석 과목을 많이 개설하는 것도 좋은 방법들 중 하나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 기존 목회자들을 위해 기독교출판사들이 원문 사역과 사역 설명 및 본문 주석 작업을 포함하는 정기간행물이나 주석류를 꾸준히 발간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경 원어 중심 이해도를 높이고 성실한 말씀 목회를 돕는 일에도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