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개신교인들의 아지트 보쥬 광장

[ 땅끝에서온편지 ] 가장 파리다운 곳 보쥬 광장

이극범 목사
2017년 07월 04일(화) 11:59

문화의 왕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개선문, 몽마르뜨 등 르네상스 이후 화려한 문화가 운집해 있다. 파리에서 하나님이 떠나신지 오래일까? 종교개혁자 장 칼뱅을 배출한 축복의 나라, 수 만 명의 개혁교인들의 피가 흐르는 센느강이 아직도 유유히 흐르고 있는 파리인데,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실까?  파리에서 하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 됐다는 관광 전문가들의 황당한 이야기를 용납할 수 없다. 

프랑스인들은 가장 파리다운 곳은 보쥬 광장(Place Vosges)이라 말한다. 당연한 말인즉 보쥬 광장은 신앙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개혁가들은 개신교도라는 이유로 파리 시민증도 받을 수 없었고 지하실과 다락방에 숨어서 예배 드려야 했던 곳이었다. 개신교도였던 앙리 4세의 결혼식 전날 개신교도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잠자리에서 가슴에 창을 받아야 했다.

루브르를 출발 파리 시청 동북쪽으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보쥬 광장은 개신교의 역사와 외적인 분위기에서의 파리다움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보쥬 광장은 찾아가는 골목부터가 사람들 사는 모습이 파리 맛을 물씬 풍긴다. 매우 프랑스적인 자그마한 공원이 있고 사면이 한 가지 모양을 한 6층 이하의 아파트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도 단조롭거나, 딱딱한 느낌은 별로 없고 오히려 단정하고 깔끔한 르네상스 건축약식이 매우 아름답다.

광장의 남동쪽 끝에는 빅토르 위고가 1832년부터 1848년까지 살았던 집을 고쳐서 만든 기념관이 있어서, 위고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도 많은 곳이다. 또 북쪽 면에 있는 건물들의 아래층은 갤러리들이 많이 있으며 피카소 박물관도 방문할 수 있다. 

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들의 외관을 관찰해보면 붉은 벽돌과 흰 돌을 연결해서 만든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건축양식을 루이 13세 식이라고 부르듯이 이 광장의 한 가운데는 그의 기마상이 자리하고 있다. 보쥬 광장에 본격적으로 왕의 거처를 건립한 사람은 앙리 4세였고, 광장 남쪽 비하그릴(La rue Birague) 입구에 건물이 남았다.

이 지역 아파트는 위그노 지도자가 많이 살았던 곳이며 앙리 4세가 죽은 후에도 파리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며 개신교 유적지 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파리 개신교인 들의 역사적 예배 장소들
현재 파리에는 30여 개 정도의 크고 작은 개신교회가 있다. 그러나 종교 개혁에서부터 앙리 4세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있었던 예배장소나 교회들은 남아 있는 곳이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은 파리동쪽 시 외각의 샤랑통(Charenton) 교회였다. 그 교회는 1625년에 건립되어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후 1802년 나폴레옹의 대 화합정책이 단행될 당시 파리의 개신교도들은 대략 2만5천여 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종교 개혁 이후 200여 년이 지나도록 박해와 감시 속에서도 믿음의 신도들은 많이 늘어나는 역사가 계속 되었던 것이다. 이 무렵에 세워진 파리에 개혁교회의 첫 장소는 아름다운 생뜨 마리교회다.

이 교회는 현재에도 방문자들에게 교회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여기에서 매우 가까운 난 아흐쉬브 길(22 Rue des Archives)의 비에뜨 교회(Des Billettes)는 파리에 세워진 최초의 루터 교회다. 박해 중에서도 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유지했던 교회들은 지금도 파리의 아름다움을 증명해 주고 있다.

* 이극범 선교사의 '프랑스 종교개혁 이야기'는 지난 7월 1일자(제3097호)로 마무리하고, 추가된 원고는 오피니언면을 통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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